[ 정지은/남윤선 기자 ]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사업부를 신설하고 책임자로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여상덕 사장을 임명하자 임직원 사이에서는 “해결사가 떴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OLED는 LG디스플레이를 넘어 LG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수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사업이지만 아직 시장이 커지기 전이라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사업을 여 사장이 맡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직원들의 얘기다.
이 같은 기대감은 여 사장이 회사에서 ‘Mr. 해결사’로 통하기 때문이다. 여 사장은 1979년 금성사(LG전자의 전신)에 입사해 21년간 일한 뒤 2000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로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35년간 노트북, TV, 모바일 디스플레이 개발사업 등 여러 분야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주로 신사업이나 실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사업을 맡아 궤도에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2006년 9000억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냈던 LG디스플레이 TV사업본부를 맡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게 대표적 사례다.
새벽 공부 하는 CEO
직원들은 여 사장의 강점으로 ‘새벽 공부’를 꼽는다. 그는 새로운 분야를 맡을 때면 처음 6개월간은 출근시간을 2~3시간씩 앞당긴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실무진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과외’를 받으며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꼼꼼히 공부한다. 여 사장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도 6개월간 매일 공부하면 사업 흐름을 짚어나가는 눈이 뜨인다”고 말했다.
특히 LG디스플레이에서는 2년여마다 새로운 업무를 맡았는데 대부분 어려운 상태에 놓인 사업이어서 빨리 이해하고 미래를 제시하려면 공부 말고는 답이 없었다는 게 여 사장의 설명이다.
공부 효과는 여 사장의 인사이트를 넓히는 데만 그치지 않고 직원들에게까지 옮겨갔다. “우리 사장님이 매일 아침 일찍 나와 공부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직원들이 긴장감을 갖고 자연스럽게 업무에 열중하게 됐다. 여 사장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인 것이다.
하는 사업마다 척척…바탕은 ‘성실’
여 사장의 부지런한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경북 성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농사를 지으며 2남3매를 키운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여 사장은 “부모님은 마을에서 가장 일찍 논에 나가 가장 늦게 들어오는 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을 보면서 나중에 부모님만큼만 부지런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전자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데는 1970년대 정부가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건설하며 전자산업을 집중 육성한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문과보다는 이과 체질이던 그는 “전자산업에서 일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해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들어갔고 1979년 금성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박사 출신이 즐비한 회사에서 그는 학사 학위만으로도 ‘세계 최초’ 기술을 주도했다. 2000년대 초 42·52·55·100인치 액정표시장치(LCD)를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LCD는 기술적 특성상 대형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여 사장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LCD 대형화의 초석을 닦았다.
2011년에는 스마트폰 등 소형 전자기기에 특화한 고해상도 광시야각(AH-IPS)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주요 스마트기기 업체 제품에 적용돼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덕분에 여 사장이 모바일·OLED사업본부를 이끈 2010~2011년, 해당 사업부의 매출이 14억달러에서 23억달러로 1년 만에 1.6배 성장했다. 이 밖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실력을 살려 해외 파트너 확대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백화점 다니며 현장 점검
올해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 과제는 OLED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LG그룹이 LCD를 이을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고 있는 OLED사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구본무 LG 회장이 직접 “OLED 성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 여 사장의 어깨가 무겁다.
OLED TV는 품질이 뛰어나지만 아직까지 다른 프리미엄 TV보다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TV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여 사장은 요즘 수시로 백화점을 찾는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 점검 차원에서다. 서울 소공동, 반포, 잠실 등 주요 지역 백화점의 가전매장에 들어가 OLED TV가 잘 팔리는지 살핀다. 때로는 경쟁사 가전매장에 들어가 “LG에선 OLED TV가 좋다던데 그게 왜 좋아요? 안 좋다면 어떤 점이 안 좋은가요?”라고 묻기도 한다. 매장 직원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OLED TV를 팔 때 애로사항이 뭔지,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대목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다.
“매순간이 도전…미쳐야 성공한다”
여 사장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매번 새로운 도전과제가 주어지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버겁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그는 ‘도전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이 주어지는 걸 감사하게 여긴다. “이 사람에게 맡겨봤더니 잘 해내니까 믿을 만해서 또 다음 과제를 맡기는 게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매주 일요일에 취미로 산을 다닐 때도 그는 항상 새롭게 도전한다. 같은 산을 가더라도 한 번 갔던 길이 아닌 다른 코스로 올라간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도전하는 게 인생의 활력소”라고 했다.
직원들에게도 이런 생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로부터 “우리 사장님은 시골 옆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는 걸 가장 좋아한다. 직원들이 자신을 편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회의를 하다가도 아닌 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다.
그는 “도전에 나선 매 순간이 위기였지만 항상 이겨냈듯 OLED 사업도 끈질기게 노력해서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 건배사도 “미치자, OLED”로 만들 정도다. 미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조다.
프로필
△1955년 경북 성주 출생 △1979년 금성사 TV공장 설계실 입사 △1980년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8년 금성사 도쿄사무소 △1994년 LG전자 모니터 설계실장 △2000년 LG필립스LCD 개발담당(상무) △2005년 LG필립스LCD 개발센터장(부사장) △2007년 LG디스플레이 TV사업본부장(부사장) △2010년 LG디스플레이 모바일·OLED사업본부장(부사장) △2012년 LG디스플레이 CTO(부사장) △2015년 LG디스플레이 OLED사업부장(사장)
정지은/남윤선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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