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한·미 원자력협정에 대해서는 다른 부처가 나서지 말라고 해서요.”
한·미 원자력협정이 타결된 지난 22일. 협정문 개정에 참여한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는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쟁점이었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등과 관련한 기술적인 부분을 묻는 질문에도 “설명할 것이 많지만 얘기할 수 없는 우리도 답답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외교부는 대외창구 일원화를 이유로 관련 부처에 협정과 관련한 내용을 함구하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때문에 개정안 가서명을 몇 시간 앞둔 기자들은 모든 정보를 외교부 홍보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42년 만에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의 원자력 이용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이다. 한국의 원자력 주권, 한·미 동맹과도 관련이 있지만 국내 산업계와 과학계, 의료계까지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크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가서명안이 체결되기 전날 기자들을 대상으로 1시간 반의 사전 브리핑을 열었을 뿐이다. 당시 현장에는 외교부 관계자들만 있었다. 파이로프로세싱처럼 복잡한 원자력 용어와 협정이 미칠 영향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줄 전문가도 없었다. 설명이 미흡하다 보니 협정과 관련한 궁금증이 남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부는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가서명안 체결을 발표해버렸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일정에 맞추려다 갑작스레 결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언론의 비판을 막기 위해 일부러 가서명안 체결식을 서둘렀다는 의혹도 있다. 외교적 성과를 홍보하는 것이 외교부의 전략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교부가 주도권을 쥐고 정보 접근을 통제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상대방까지 배려해야 하는 협정의 성격상 여러 부처에서 대응하다 보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관련 부처 합동설명회를 통해 국민의 이해도를 높였으면 어땠을까. 강대국과 협상하기에 앞서 외교부는 다른 부처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식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전예진 정치부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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