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부를 받으며 얻는 배움

입력 2015-04-23 21:01  

후원인 사연, 의사에겐 나침반
귀한 기부금 철저히 관리해야

방문석 <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



이달 초 서울대병원에서 기부자들을 위한 감사 행사를 열었다.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병원에 꾸준히 기부한다. 여러 후원인의 기부 동기와 사연은 필자에게 의사로서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돼준다.

한 할머니께선 6·25전쟁 후 빈손으로 월남해 부부가 열심히 모은 10억원 넘는 재산을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병원에 기부했다. 유명 디자이너였던 고(故) 앙드레김은 생전에 전공의 교육에 써달라고 기부를 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기부금으로 ‘앙드레김 어워드’라는 상을 만들어 매년 우수 전공의들의 해외 선진 의료기술 연수에 쓰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의료부자재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한 후원인은 매년 즐거운 마음으로 기부를 해왔으며, 그 부인은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선천성 장애로 인해 40대 나이에 사망한 환자를 기리며 환자의 가족 3대가 합심해 기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미 언론에 소개된 사연들과 더불어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당사자가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기부 속에 담겨 있다.

얼마 전 병원 후원자들의 사연을 자그마한 영상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기부 감사 행사에서만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보고 배운 느낌을 서울대병원의 모든 구성원과 공유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병원 로비 벽면에 모니터를 설치해 계속 이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필자 자신이 기부자들의 사연에서 배웠던 것처럼 다른 의사와 의과대학 재학생, 간호사와 병원 직원도 모두 후원자들의 사연을 봤으면 했다. 우리 스스로 의업(醫業)의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되묻고, 만일 잘못됐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나침반을 함께 공유하길 희망하기 때문이었다.

귀하고 아름다운 기부금을 절대로 헛되이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간혹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단체에서 기부금을 방만하게 관리하고 사용해 도덕적 해이 문제로 불거진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때 국정감사를 받은 모 기관이 평소에 알던 이미지와 상반된 도덕적 해이가 있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래서 몇 년간은 그 기관에 기부를 중단했다. 기부를 받는 과정은 출중해 많은 기금을 모으고 있지만, 정작 그 기금을 쓸 땐 사용 목적에 맞는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들이 돈을 낭비하는 단체도 있다고 들었다. 기부를 받는 단체는 후원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기금 사용 시 철저한 투명성과 효율성을 갖출 의무가 있다.

방문석 <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msbang@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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