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의 민첩성·창의성·추진력 '외면'
기업을 생산함수의 한 요소로만 취급…예측 어긋나면 '시장 실패'로 몰아
한국인 "기업인에 비호감" 17%…미국의 4배·일본의 3배 달해
“유한책임 원리에 기초한 주식회사는 근대사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다. 주식회사가 없었다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토머스 에디슨의 전기조차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 컬럼비아대 총장이던 니컬러스 버틀러는 주식회사의 사회적 기능을 이와 같이 극찬했다. 경제원론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생산과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며, 기업 투자와 혁신활동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업, 기업가를 좋게 보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사람마다 국가별로 다르다. 기왕이면 기업가 이미지가 좋은 나라일수록 규제는 적고 기업가 정신은 왕성할 것이다. 이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속가능하고 포용적 성장을 위해 회원 뮌?기업가 정신을 진흥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세계 주요국의 기업가 이미지를 조사, 비교하고 있다. 2012년도 조사 결과 EU 회원국의 기업가 호감도는 평균 53%며, 부정적 인식은 7%다. 이 둘을 뺀 나머지는 중립 의견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기업인이 가장 부러워할 나라는 덴마크일 것이다. 덴마크의 기업가 호감도는 74%로 가장 높고, 반기업인 정서는 1%로 가장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조사대상 40개국 중 반(反)기업인 정서가 가장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기업가 호감도는 EU 평균에 한참 못 미쳐 34%에 불과하다. 반면에 반기업인 정서는 17%로 EU 평균보다 약 2.5배 높고 미국보다 4배 이상 높다. 우리와 이웃하며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일본에서도 반기업인 정서는 6~7%로 한국보다 크게 낮다. 한국에서는 기업인뿐만 아니라 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높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반기업 정서가 다른 나라보다 높다고 응답한 비율이 60%에 달했다.
한국에는 왜 이렇게 기업,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을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예를 들면 비교적 짧은 기업 역사와 발전 과정, 기업 본질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기대, 언론에 주기적으로 대서특필되는 정경유착은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그러나 반기업(인) 정서 이면에는 기업의 본질을 간과하고 기업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주류 경제학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경제학 이론이 반기업(인) 인식의 싹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2009년도 노벨상 수상자인 올리버 윌리엄슨은 주류 경제학의 이런 경향을 기업에 대한 ‘적대적 전통’이라 하며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
반기업(인) 인식에 주류 경제학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 경제이론에서 기업은 생산함수에 불과하며, 기업이 시장과는 다른 조정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실체임을 간과하고 있다. 이론에 따르면 생산량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과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생산량을 늘리려면 인적, 물적 자본을 늘리거나 또는 기술 진보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촘촘한 계약망으로 얽혀 있으면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기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또 자본과 기술, 경험이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기업 성장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기업가 정신이다. 그런데도 경제학적 기업 모형에는 기업가 정신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둘째, 기업가는 이윤기회 민첩성, 창의성, 불굴의 추진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만 이론은 이를 감안하지 않는다. 경제이론에서 기업가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 생산량 또는 최적 요소 투입량을 결정하며, 그 결정 방법은 수학적 미분이다. 미분을 통해 최적량을 정하고는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바 없이 투입 요소가 최종 생산물로 전환되는 기술적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기업가다. 이런 것이 기업가라 한다면 수학에 밝은 학자나 인공지능 컴퓨터가 더 잘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수학을 잘한다고, 가방끈이 길다고 기업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셋째, 경제학의 완전경쟁균형이론도 반기업(인) 인식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완전경쟁균형은 ‘보이지 않는 손’의 가격 신호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의 생산과 소비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자원이 최적으로 배분되는 상태다. 이처럼 정부 통제와 조정이 없어도 자원 배분이 최적화될 수 있다는 완전경쟁균형이론은 시장원리에 대한 무한 신뢰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완전균형에 이르는 데 필요한 가정 또는 조건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협상과 거래에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가정, 기업은 서로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큼 작고 동일하다는 가정이 대표적인 경우다.
만약 이 가정대로 거래비용이 없다면 로널드 코즈의 지적처럼 누구도 기업을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모두가 ‘원자적 개체’로 동일하다면 해럴드 뎀세츠가 지적한 것처럼 사실상의 경쟁이 일어날 여지도 없다. 그럼에도 완전균형모형은 애덤 스미스 이후 200년에 걸쳐 많은 경제학자가 노력해 얻은 결실이고 수학적으로 완벽하고 멋진 이론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이 이 멋진 이론에 반한 나머지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론의 가정 또는 예측과 다른 경제현상을 보면 ‘시장실패’로 의심해 규제의 필요성을 주창하곤 한다.
어떤 학문보다 기업의 본질과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은 경제학이 오히려 반기업(인) 인식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은 불편한 진실이다. 문제의 발단은 기업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미분 가능한 함수로 지나치게 추상화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우리 주변에서는 경제학을 안다는 사람이 더욱 규제 지향적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누구의 통제 ?조정이 없어도 가격조절기능에 의해 자원이 최적 배분될 수 있다는 이론이 시장 실패와 규제의 논거로 역이용당하고 있음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거래비용 절감이 기업 탄생의 동기”
코즈, 논문 내고 59년 후 노벨상
근대적 주식회사의 효시는 1602년 생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기업을 생산함수로 취급했다. 주식회사가 태동한 지 300년이 넘도록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경제학의 생산이론에 사실상 기업이 없다며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로널드 코즈(1910~2013·사진)다. 1937년 발표한 논문에서 코즈는 경제활동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업이 조직화된다고 했다. 집을 살 때 집값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중개수수료, 취득·등록세를 내야 하는데 이런 부대비용이 거래비용에 해당한다. 거래비용이 높으면 시장 교환을 꺼리고 해당 거래를 내부화하려는 유인이 생기는데, 이 내부화의 동기가 기업이 생기는 원리라는 게 코즈의 설명이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거래비용이 없다고 봤기 때문에 코즈의 문제 제기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반발도 따랐다. 거래비용은 물리학의 마찰과 비슷한 개념이며, 물리학에서도 마찰이 없다는 가정 아래 연구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올리버 윌리엄슨에 의하면 물리학자와 경제학자의 태도는 크게 다르다. 물리학자는 마찰이 존재함을 알고 이를 감안하지만 경제학자는 경제시스템 운용에 관한 마찰비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래비용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법학, 행정학 등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코즈는 1991년 노벨상을 받았다. 1992년 여름, 필자는 몇몇 교수와 빈 강의실에서 코즈를 만나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코즈는 1937년 논문을 사실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1932년에 썼다고 했다. 그 논문 덕에 59년이 지나 상을 받았으니 노벨상 받으려면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며 농담도 했다.
이제 거래비용은 상식이 됐다. 그러나 기업에 대해서는 거래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 증진보다 전통 경제학의 독점화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아직도 우세하다. 모두가 거래비용을 말하지만 실질적인 활용은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황인학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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