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상속 분쟁은 있게 마련이다. 왕위 다툼은 종종 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이나 스페인, 폴란드, 오스트리아의 왕위계승 전쟁이 그렇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 군주제 국가들은 상속 방법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장자상속이 거의 대부분이다. 장남이 1순위이고, 자식이 없으면 차남이 2순위다. 정실이 우선이고 첩이 다음이다.
유럽은 기독교 영향으로 일부일처제이기 때문에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상속했다.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카탈루냐 군주국 등은 여성 군주와 이웃나라 남성 군주의 혼인에 따라 영토를 합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왕가와 독일 제후는 여자 상속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왕과 하노버왕을 겸한 윌리엄 4세가 죽자 영국 왕위는 넷째 동생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빅토리아 여왕이 상속했지만 하노버 왕위는 다섯째 동생인 아우구스트 1세가 물려받았다.
아시아에서는 여성 군주가 드물었다. 중국 역사상 제위에 오른 여성은 측천무후가 유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 3명(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있었지만 이후엔 없었다. 유목국가인 몽골 등에서는 말자(막내) 상속이 기본이었다. 성서의 창세기, 그리스신화에서 볼 수 있으니 오래된 전통인 듯하다.
우리 고려시대처럼 형제 계승도 흔했다. 특히 아랍권에서는 형제 상속이 대세다. 워낙 분쟁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일까. 왕이 급사했을 때 어린 아들보다 장성한 형제가 나서서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라는 의미에서 ‘왕세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요르단 등이 이런 케이스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속사정은 좀 다르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가 정략결혼으로 세력을 키웠기에 부인이 23명, 아들이 45명이나 됐다. 그는 죽기 전에 큰아들을 첫번째 계승자, 둘째아들을 두번째 계승자로 임명했다. 왕자의 난을 우려한 조치다. 이런 전통에 따라 2~7대 왕을 모두 형제가 맡았다. 다툼은 없었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고령화로 ‘노인정치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사우디 왕위계승 제도가 바뀌고 있다. 살만 국왕(81)이 욍위 계승자를 왕세제인 이복동생에서 2순위 계승자였던 조카로 교체했다. 공석이 된 2순위에는 자신의 아들을 지명했다. 머잖아 손자 세대가 등극할 모양이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권력구조의 격변을 전망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유가 향방이 더 관심이다. 다행히 석유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석유장관도 바뀌지 않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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