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국가R&D 사업화 성공률 높이려면 관료들 손떼라

입력 2015-05-05 20:51  

국가R&D 투자규모 세계 6위, GDP비중 세계 1위
연구성공률 82%에 사업화는 美·日의 ⅓인 20% 그쳐
관료 중심 위원회체제로는 선진 창조형 R&D 안돼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교수 >




국공립 연구기관과 정부출연 연구원이 정부 예산으로 개발한 19만건의 기술 중 81%가 무용지물이 돼 장롱 속에 잠들어 있고, 기술무역수지도 57억달러 적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성공률은 82%나 된다고 하는데, 실제 사업화로 이어진 비율은 영국 미국 일본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 수준이다. 연구개발비 대비 기술료 수입으로 결정되는 연구생산성 역시 미국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이 총체적 부실의 늪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당장 창조경제와 경제 살리기에 써먹을 수 있는 창조적 사업화 기술을 애타게 찾고 있다.

산업계는 자신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분야를 외면하고 있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실망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주축인 전자·자동차·화학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주역인 과학기술계도 편치는 않다. 모름지기 연구개발사업은 자신들의 장기적 안목과 독창적 창조력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돼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 산업계 과학기술계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가 과학기술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56년부터다. 미국의 원조를 이용해서 10년 동안 237명의 원자력 전문가를 양성했다. 1959년에는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당시로서는 거액을 투자해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를 도입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이듬해 과학기술처를 설립했고, 뒤이어 KAIST와 대덕연구단지도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23기의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고, 중화학·제철산업을 시작으로 선진국 진입의 꿈을 실현하게 된 것은 반세기 전에 그렇게 뿌리기 시작한 ‘기적의 씨앗’ 덕분이다.

초창기 KIST, 산업의 씨앗 뿌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에 국내총생산(GDP)의 4.15%에 해당하는 542억달러를 투자하는 연구개발 대국이다. 투자 규모로는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이고, GDP 대비 비중이나 투자 증가율로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되는 국가 연구개발사업 규모도 18조9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1998년 2조7000억원이던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한 결과다. 2008년 18% 수준이던 기초연구 비중도 38.1%로 늘어났다. 대학 연구개발 사업도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규모와 구성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 투자 효율이 처음부터 낮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 사실은 출연연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KIST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KIST는 1990년까지 20여년간 현재가치로 3조30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서 493조원의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를 창출했다. 투자 대비 149배의 놀라운 성과를 올린 셈이다. 당장 산업화가 가능한 선진기술을 집중적으로 추격해서 개발하고, 정부가 사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컬러텔레비전(1972), 동복강선(1976), 폴리에스터 필름(1978), 아라미드 필름(1982), CFC 대체물질(1983), 인공신장(1985), 인조다이아몬드(1988) 등의 성공 사례가 이어졌다. 당시의 KIST는 철강·중화학·자동차산업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꿈에 그리던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진입했던 1990년대부터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1991년 이후 KIST에 대한 투자는 총 8조원으로 전반기보다 2.5배나 늘어났지만 창출된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는 고작 102조원에 머물렀다. 투자 대비 성과가 45배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학논문색인(SCI) 학술논문 수가 1만1000여편으로 114배 늘어났고, 특허 등록 규모도 5700여건으로 18배 늘어났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확대가 사업화 대신 논문과 특허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90년대부터 논문·특허만 양산

기술적·경제적으로 발전한 상황에서 선진 기술의 단순 모방으로는 사업화가 어려워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정부 규모가 확대되고, 민주화와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게 더 심각한 문제였다. 연구개발사업을 주도했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연구개발사업의 기획 관리 평가의 전 과정에 대한 관료사회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연구개발 성공이 연구개발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자리를 잡게 됐다. 경쟁을 통한 효율 극대화를 명분으로 도입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도 연구개발의 성공률 상승과 사업화 성공률 하락에 기여했다. 순환보직이 정착된 관료사회에서 자신의 임기 후에 시작되는 사업화에 대한 책임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보고서 제출로 PBS의 책임이 끝나버리는 연구자 입장에서도 사업화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낯선 제도 도입은 신중해야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기획 관리 평가 활용의 전 주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창조형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자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물론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책무성은 강화해야 한다. 관료가 중심이 돼 민간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위원회가 주도하는 체제로는 선진창조형 연구개발의 다양성 다원성 모험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과학기술 선진국의 낯선 제도에 대한 경계심도 필요하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의 제도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 산업계 과학기술계 사이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그런 전통은 모두 현대 과학기술의 태동기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역사적 환경에 맞지 않는 낯선 제도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분석해서 우리에게 맞는 연구개발 관리 제도를 찾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기초·원천·응용의 합리적인 비중도 함부로 정할 것이 아니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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