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회사가 곧 도산할 게 명백한데도 경영자가 무리하게 법정관리를 지연시켜 채권자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이를 막기 위한 입법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사진)는 법무부가 최근 발간한 선진상사법률연구 통권 70호에서 ‘도산에 근접한 시기의 이사의 의무’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한 교수는 “도산에 근접한 시기에 이사 등 회사 경영자가 무리하게 자력 회생을 도모하거나 도산절차 개시 신청을 지연시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독일 영국 등과 달리 한국은 도산에 근접한 시기를 따로 정해 이사의 의무를 규율하는 법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원국에게 상거래법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공하는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이런 폐해에 대처하기 위해 2013년 ‘UNCITRAL 도산법 입법지침’을 개정했다. ‘도산이 근접한 시기에 경영자가 져야 하는 의무’를 주제로 입법 지침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한 교수는 “UNCITRAL 입법 지침의 핵심은 도산이 임박하거나 불가피한 시기에 회사의 이사 등 경영자는 채권자 및 그 밖의 이해관계인 이익을 고려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며 위반 시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이를 국내 입법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다만 입법 지침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할 것인지, 회사법과 도산법 중 어디에 규정하는 것이 적절할지 등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현행 도산제도,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등 제반 실정을 감안한 보다 깊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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