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영국 등 주요국 국채가격 일제히 급락
'S&P 원자재 상품지수' 한달새 12% '껑충'
[ 강동균 / 뉴욕=이심기 기자 ]
글로벌 자금이 주식과 채권시장을 빠져나와 원자재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그동안 원유 구리 등 원자재는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큰폭으로 반등하고 주요국 채권금리까지 가파른 속도로 오르면서 “저금리를 기반으로 움직이던 글로벌 유동성의 흐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돈 빠져나가는 증권시장
당초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시기와 폭이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지표들이 혼조세를 보이는 와중에 채권금리가 단기 급등하면서 유동성 장세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리 상승에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자금 흐름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향후 시장의 방향성은 실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3대 지수 모두 50일 평균 이동선이 무너지면서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졌다. 다우지수는 18,000선이 깨졌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 역시 5000선 아래로 내려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주식펀드에서 지난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인 360억달러의 투자금이 유출됐다”며 “달러화 강세로 기업 이익이 크게 줄어든 데다 시세차익을 노린 매도세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채권시장 역시 지난주부터 이어진 대규모 매도세가 지속됐다. 5일 미 국채가격의 지표가 되는 10년물은 연 2.17%까지 오르며 지난 3월9일 이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 역시 채권을 처분하려는 기관들이 몰리면서 가격 하락세가 이어졌다. 독일 국채(분트) 10년물 금리는 이날 연 0.52%까지 오르며 지난해 말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난달 20일 연 0.07%까지 떨어지면서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불과 11거래일 만에 35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영국 국채(10년물)도 연 1.96%까지 오르며 지난해 12월8일 이후 최고 수준에 올랐다.
○돈 몰리는 원자재시장
국제유가는 5일(현지시간) 올 들어 처음으로 배럴당 60달러 선을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리비아 동부의 주요 원유 수출항구인 즈웨티나항이 반군의 저항으로 봉쇄된 것과 미국의 원유 재고 감소 발표가 이날 유가 상승의 직접적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주식·채권시장을 빠져나온 돈이 원자재시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관측도 무성하다. 원유 등 24개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골드만삭스 상품지수(S&P GSCI)는 최근 한 달 새 12%가량 올랐고,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작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6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국제 유가는 지난 3월 중순 이후 40%가량 올랐다. 지날달에만 25% 뛰었다. 월간 기준으로 2009년 5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 같은 흐름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TFC)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기준 WTI의 순매수 포지션 규모는 26만7614건으로 작년 7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유가 하락에 베팅한 매도 포지션은 7만4662건으로 5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대형 펀드회사들은 3월 초부터 구리 등에도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 3월 에너지 부문 원자재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유입된 자금은 지난 2월에 비해 40%나 급증했다. 구리 가격은 지난 1일까지 7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9.9% 올랐다.
강동균 기자/뉴욕=이심기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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