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연 영업익 100조 바라보는 애플…너무 약이 오릅니다"

입력 2015-05-07 21:20   수정 2015-05-08 05:04

성장성 의심받고 있지만 무난했던 '사령탑 1년'
현금 움켜쥔 글로벌 M&A 최강자 애플 넘어서야
'돌아온 대장주'에 투자자 환호하는 날 언제 올까

"일상은 한결같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오래전부터 수면시간은 4시간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외지사(법인)에 전화를 건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 조일훈 기자 ]
얼마 전 국내 5대 자산운용사 중 한 곳이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수십조원을 굴리며 수익률에 목을 매는 대형 바스켓이 한국 증권시장의 대장주를 싹둑 도려낸 것이다. 자산운용사 대표의 설명은 이랬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성장주가 아닙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가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도 없다. 하지만 주가가 경영 실적을 평가하는 수많은 잣대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횡보하는 주가는 적잖은 부담이다. 코스피지수가 2500을 넘어 3000까지 치고 올라가려면 삼성전자 주가가 200만원대로 올라??한다. 그럼에도 대세상승을 점치는 전문가들조차 향후 주도주로 삼성전자를 지목하지 않는다. 과거 글로벌 시장을 거침없이 질주했던 ‘전차군단(삼성전자-현대자동차)’의 재림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들은 뜻밖에도 아모레퍼시픽 한미약품 같은 회사들을 꼽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도전

최근 주요 언론들은 ‘이재용 체제 1년’의 성과와 경영 스타일을 조명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미국과 중국을 종횡무진하는 글로벌 경영과 한화와의 ‘석유화학 빅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아직은 많은 것이 물음표다. 기대와 의구심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영자로서 성공 여부가 애플을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계량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궁극적 문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자회사 가운데 최고의 부품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는 경쟁사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기술력과 생산성을 자랑한다. 삼성전자 주식이 성장주는 아니더라도 가치주로서는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관건은 스마트폰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소니가 필생의 숙적이었듯이 이 부회장에겐 애플이 그런 존재다.

성장주 대열 이탈한 삼성전자

애플은 무서운 상대다. 세계 최고의 시가총액(5월6일 기준 7134억달러)과 현금자산(1940억달러), 분기마다 투자자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폭발적 수익력, 탈세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국 국민의 압도적 지지는 ‘넘사벽’처럼 삼성전자 앞을 가로막고 있다.

무엇보다 강력한 경쟁력은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부지런히 일한다”(한상원 한앤컴퍼니 사장)는 것이다. 애플 직원들을 상대하는 아시아 부품업체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를 신문에 쓰면 삼성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모든 직장인이 부러워하는 ‘스마트 워킹’과 별개로 추상 같은 회사 기강을 유지하고 있다. 신상필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현금 부자인 애플이 회사채 발행을 늘리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애플은 2013년 이후 약 400억달러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여기에 2017년까지 예상 소요자금 700억달러 중 일부를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엔화표시 채권을 별도 발행할 것이라는 블룸버그의 보도도 있었다.

미국 증권가는 애플의 절세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들인 돈을 미국으로 끌고와 엄청난 세금을 낼 바에야 채권이자를 부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이 글로벌 금융계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삼성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보유 현금을 운영자금으로 쓰지 않고 계속 쌓아둘 경우 향후 글로벌 인수합병(M&A)에서 애플을 당해낼 기업은 없다. 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 같은 기업이 사정권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돈다.

애플은 최종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벤치마크(기준 수익률)’의 지위를 노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은 애플의 발행금리를 뒤쫓아 태핑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치 한국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달러·유로채권 금리가 국내 시중은행과 공기업들의 해외채권 발행때 벤치마크가 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제조업계의 최강자 애플이 금융계에서 이 같은 지위를 확보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금의 곱절로 높아질 것이다.

금융 벤치마크까지 노리는 애플

이 부회장은 이런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애플을 그만큼 절박한 자세로 연구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삼성 정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애플 CEO(최고경영자) 팀 쿡의 자극적인 발언도 수없이 곱씹었을 터.

그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사령탑을 맡은 뒤 놀라울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상과 집, 회사와 출장지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신라호텔을 제외한 외부 저녁자리는 삼가고 있다. 술은 입에 대지 않는다. 자신에게 쏠리는 외부의 시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맥주만 집에서 한잔씩 마신다. 초등학생 딸이 그어놓은 통금시간은 밤 10시30분이다.

그의 일상은 한결같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오래 전부터 수면시간은 4시간이었다.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제품별 생산 출하 판매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한 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외 지사(법인)에 전화를 건다. 헬스클럽은 다니지 않는다. 스트레칭 정도다.

대장주 언제 귀환할 것인가

수첩에는 국내외 CEO, 현장 엔지니어,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들과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오랜 친구 사이인 경제부처 공무원도 가끔 만난다. “성장률 금리 환율 등의 동향을 꼼꼼하게 물어보더라”고 친구는 전했다.

그는 얼마 전 삼성전자와 애플의 1분기 실적이 거의 동시에 발표된 즈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1년에 30조원을 벌까 말까 한데…상대는 어느새 100조원을 바라본다 하니 너무 약이 오릅니다.”

이 말을 들려준 사람은 “너무 약이 오른다”는 표현에 이 부회장의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고객사이자 경쟁사인 애플. 당장의 격차는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마음 속의 칼을 갈고 있다.

증권가의 야박한 인심이 ‘돌아온 성장주’ 삼성전자에 다시 환호를 보낼 날이 올 것인가. 어쩌면 본인 회심의 역작이 될 수도 있는 ‘폴더형 스마트폰’, 지갑처럼 완벽하게 반으로 접을 수 있는 폰이 출시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이르면 내년 초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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