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이해당사자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 필요한가

입력 2015-05-08 20:49  

[ 백승현 기자 ] 지난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결렬 선언으로 간판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대표가 노동 개혁을 이뤄내겠다며 기초 합의를 이룬 뒤 3개월여 협상을 벌였지만 대타협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사실상 실패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내겠다”며 의지를 보였지만, 구조 개편은커녕 기여율과 지급률 등 일부 숫자 조정에 그쳤고, 정치권이 국민연금과 연계하면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노동 개혁과 공무원연금 개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타협 기구 참여 주체의 대표성과 적절성을 지적한다. 노동 개혁의 경우 개혁 대상인 노동조합이 개혁 논의의 주체로 들어왔고,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역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과 이해 당사자이자 개혁 대상인 공무원들이 논의를 이끌면서 대타협은 애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주장이다. 이해 당사자가 들어간 사회적 합의 기구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다.

반면 사회적 합의 기구는 유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동 현안이나 공무원연금 같은 갈등 요소가 많은 이슈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더 큰 갈등을 유발해 사회적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회적 합의 기구 무용론자들이 제기하는 참여 주체의 대표성 논란에는 “보완해야 할 문제이지 기구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못 된다”고 반박한다.

‘이해 당사자가 들어가 있는 사회적 합의 기구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대학장)와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지상 토론을 벌였다.

찬성 / “계층 갈등 풀어낼 유일한 대안…대타협 실패해도 존재가치 충분”

참여주체 범위 늘리고 더 활성화해야

지난달 결렬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특별위원회를 두고 일부에서 사회적 합의 기구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획기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때마다 노사정위 무용론은 항상 나왔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기구가 없다면 가뜩이나 갈등 수위가 높은 한국 사회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것이므로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는 존치돼야 한다.

노동 정책 현안들은 노사 간의 이견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사안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노사의 극심한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1996년 말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발생한 2주간의 총파업으로 산업이 마비되는 등 노동문제의 폭발성을 경험한 바 있다. 더욱이 지난 20여년간 극심한 사회 양극화로 소외 노동자 계층의 불만이 급증하고 노사 간의 갈등이 제도권 내 해결책보다는 집단시위나 철탑 농성, 혹은 개인의 생명을 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계층 간의 통합과 화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일부 보호 수준이 높은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을 시간·임금·고용 측면에서 완화하는 한편 열악한 비정규직의 근로조건과 고용안정을 개선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이룰 방법은 노·사·정 대화밖에 없을 것이다. 노사 어느 일방의 양보를 강요하는 개혁안을 정부 주도로 밀어붙인다면 극한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고 사회적 갈등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 개혁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기구가 유일한 대안이다.

한국은 1998년 노사정위가 처음 출범한 이래 17년간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노·사·정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문성을 축적해 정착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노사정위를 해체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와 노하우, 그리고 전문성을 모두 잃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사회적 합의 기구는 기적 같은 대타협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스웨덴과 독일, 1990년대 네덜란드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의 사회적 합의 성공사례가 보여주듯이 노·사·정 대타협은 세계적으로도 몇 년에 한 번 이뤄질 정도로 이루기 힘든 과업이다. 평상시에 노사정위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정부와 노사가 수시로 의견을 조율하고 정책의 수위를 조정하는 소통기구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사회적 합의 기구가 대타협을 이루지 못할 ㎏떪?각국에서 사회적 합의 기구를 폐지했다면 사회적 합의 기구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사회적 합의 기구 참여자의 대표성 문제는 보완돼야 할 문제이지 이를 빌미로 기구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미(未)조직 근로자,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등 이번 노·사·정 대화의 실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노·사·정 대타협이 진행돼야 한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 노동시장 양극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상황이 절박한 청년실업자나 비정규직 대표들이 협상 과정에 포함됐다면 협상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사·정 대화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해 계층 간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정부의 중요한 전략적인 선택이며 선진국의 경우 국가 경쟁력의 근원이 된 경우도 많다. 비록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결렬됐지만 다음 대타협을 위한 출발점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대타협 실패가 더 큰 개혁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반대 / “합의란 명분으로 공익은 배제…이해당사자들 이익만 보호”

집단이익 추구의 장으로 변질

사회적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 기구’가 환영받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보다 국가를, 경쟁보다 협동을, 합리?계산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유기체적 국가관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는 우리 정서에 잘 맞는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서로 협력해 공통의 정책을 이끌어내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는 명분과 달리 결과는 항상 딴판이다.

대표적 사회적 합의 기구인 노사정위원회의 타협은 실패했고,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에서는 장기적인 공익과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노사정위에서는 노동계의 이익이 관철되지 못했고, 공무원연금 개혁에서는 이해 당사자의 이익이 반영됐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사정위의 타협 실패는 다행이고 공무원연금개혁 특위의 합의는 국민의 불운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노조의 승리다. 그들은 연금 개혁으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했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 여기에는 다가올 총선·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도 한몫했다. 합의 기구의 이익 추구에 피해를 보는 것은 다수 국민이다.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국민 다수의 이익이나 공익은 배제된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합의 기구는 국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참여한 사람이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한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접어놓고 공익을 챙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합의라는 명분에 매몰돼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사회적 합의 기구는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참여자의 이익 극대화에 충성한다. ‘정의의 두 원칙’으로 학문적 명성을 얻은 존 롤스는 이 원칙을 이끌어내기 위해 원칙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다고 가ㅗ杉? 정의의 원칙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 천부적 자질과 능력, 지능과 체력을 비롯해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만일 자신의 처지를 알면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을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무지의 베일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은 나오지 못한다. 이해 당사자가 중요한 국가 정책에 참여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최악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이해 당사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무지의 베일이 아니라 적어도 ‘공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을 정책 결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이해 당사자의 합의로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국가 정책 결정 기구로서 사회적 합의 기구는 버려야 한다. 사회적 합의 기구가 잘 작동하는 사회에서 정책은 이익 단체의 이익에만 봉사할 뿐이다. 이익 단체를 위해 국가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민 부담이다.

사회적 합의 기구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정부의 집단적 의사결정을 줄이고 개인의 선택을 늘리는 것이다. 근로자 각자가 고용주와 자유 계약을 하고, 연금도 국가연금이 아니라 개인연금으로 유도함으로써 연금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 모든 문제에서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국가의 온정주의적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이것이 집단이익 추구의 장(場)으로 타락한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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