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연금개혁…영국서 배워라

입력 2015-05-11 20:43  

국민 설득 5년 공들인 英 vs '4개월 만에 졸속 처리' 韓


[ 조진형 기자 ]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여야는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액) 50% 상향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정치권에 주도권을 빼앗긴 채 끌려다닌다.

지금처럼 국회가 주도해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사회적 합의는커녕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많은 시간을 들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영국의 연금개혁 성공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지난주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과정에서 불쑥 국민연금 개혁 이슈가 불거졌다. 여야는 국회 산하에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오는 8월 말까지 운영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2007년 정부 중심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진 것과 달리 국회가 공무원연금에 이어 국민연금 개혁까지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 주도하에 철저하게 전문가 손을 빌려 개혁안을 마련한 영국과?대조적이다. 영국 정부는 2002년 말 독립기관인 연금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연금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英, 1년 걸린 토론회
韓, 한두 번으로 끝내

연금위원회는 금융계·학계·노동계에서 명망 있는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다. 연금위원회는 2004년과 2005년 순차적으로 객관성을 인정받은 개혁안을 내놓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합의에 나섰다.

한국은 국회 주도의 사회적 기구를 통해 9월 정기국회까지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장 사회적 기구가 구성된다고 해도 남은 기간은 4개월밖에 없다. 반면 영국은 5년이란 시간을 투자했다. 연금은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이슈인 만큼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연금위원회의 개혁안을 토대로 대국민 토론회만 1년 가까이 열었다. 장·차관이 2005년 6월부터 11월까지 전국 8개 지역에서 토론회를 직접 진행했고, 이듬해 3월까지 대국민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했다. 2006년 3월18일 ‘연금의 날’에 열린 대국민 토론회는 영국 역사상 가장 길고 성대한 토론회로 기록됐다. 토론회 참석자는 인구센서스 조사를 토대로 선발됐고, 온라인으로 참석한 사람만 6529명에 달했다. 공청회 한두 번으로 갈음하는 한국의 여론수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영국 정부는 대토론회가 끝난 뒤 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혁안은 연금 수급연령을 종전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민감한 내용을 담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통과됐다. 정부 관계자는 “영국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유기적으로 협조해 연금개혁을 이룬 반면 한국은 국회가 일방적으로 주도해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며 “이때문에 사회적 합의 과정도 난항을 겪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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