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법사위원장의 월권 문제만은 아니다. 무슨 법안이든 소수 정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쟁점 법안에 대해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다수결 찬성을 규정하고 있는 소위 국회선진화법 탓이다. 이 법은 신속 처리 안건을 정할 때도,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를 끝낼 때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소수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국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다수당인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주도해 만들었다. 국회 몸싸움과 ‘날치기입법’을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음모적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소수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 예고되다시피 하자, 억지로 몽니를 심어놓았던 것이다. 헌법은 국회 의결정족수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정하고 있다. 선진화법은 위헌적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 뒤늦게 이 법의 위헌성을 가려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놓고 있다. 게다가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장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것은 어려우니 내년 총선 전에 개정안을 통과시켜 다음 20대 국회 때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소수당의 횡포에 발이 묶여 ‘식물국회’가 되거나, 아니면 법안 하나를 처리하려면 야당이 요구하는 법안과 맞교환하는 정치적 흥정을 해야 한다. 입법권 남용이 유독 극심한 것도 소수당의 ‘알박기’에 밥상을 차려준 국회선진화법 탓이 크다. 새누리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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