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환경 악화, 생산성도 급락
빠른 통합으로 시너지 높여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모처럼 제주에 쉬러 갔다가 불편한 경험만 하고 왔다. 길거리의 중국인 관광객들은 어깨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신호등을 무시한 채 무단횡단하는 통에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중국인의 과도한 제주 투자문제가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지라 택시기사에게 푸념하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나이 지긋한 기사는 1997년 외환위기 때를 생각하면 중국인 관광객은 누가 뭐래도 제주 경기를 진작시켜주는 고마운 고객이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급유예) 선언 직전까지 갔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당시의 모멸감이 떠올라 필자는 금방 공감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외환위기를 역사책 속의 한 사건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이니 실감하지 못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지난 6일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미국 증시의 고평가 위험성을 경고한 발언에 글로벌 주식과 채권값이 동반 추락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걱정이 많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이도 단순한 일시적 부침(浮沈)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금융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정도로 뒤숭숭하다. 2012년 이후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4% 초반대의 회복세라던 한국 경제의 성장전망치를 1년에 수차례나 하향 조정하는 등 저(低)성장기조가 심화되고 있다. 잘나가던 중국 경제도 2011년부터 성장에 제동이 걸려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의 마지막 버팀목인 한국 은행산업의 생산성지표로 본 실력은 2013년도 기준으로 1991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서울대연구소의 연구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내 은행의 핵심이익 중 90%를 차지하는 이자이익을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이 2014년 역대 최저 수준인 1.79%로 하락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1.98%보다도 0.19%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은행 생산성지표의 급격한 하락에 뒤이어 2008년 금융위기에 처했고 우리도 은행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외환위기가 닥쳤다.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의 은행들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받고 숱한 합병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금융의 핵심역량을 키우려는 노력은 부족했고, 본질을 외면한 외형 경쟁에만 몰두했다. 은행산업의 성적표가 최악인 까닭이다. 이런 가운데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하나·외환은행 통합 내용이 담긴 ‘2·17 합의서’를 수정하기로 했고, 통합작업의 최대 걸림돌이던 합의서 내용 수정을 외환은행 노조가 먼저 제안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최근 2~3년간 은행의 경영환경 변화는 상상 이상이다. 바젤Ⅲ로 대표되는 자본 및 유동성비율 등 건전성 규제와 금융소비자보호 법률 및 정책 강화 등은 은행의 자산포트폴리오 운용 및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지만 은행에서 IT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활용되는 수준일 뿐이다. 최근엔 페이팔, 알리페이 등 글로벌 e-커머스 사업자들이 국경을 넘는 온라인 및 모바일 결제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들도 모바일 지급결제를 기반으로 예금·대출 등 은행 고유업무를 잠식하고 있다. 계좌이동제, 복합점포, 금융상품자문업,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등 경쟁촉진정책이 줄줄이 도입돼 은행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합의서 수정을 놓고 하나·외환은행 통합작업이 지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적극적으로 서둘러도 통합작업이 성사될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로 간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한 발짝씩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다른 외환위기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하나·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기대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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