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오월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미당 서정주의 절창이 생각나는 달이다. 청록파 박목월은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는 짤막한 시구에 이맘때 풍경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소설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는 좀 신기한 작품이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란 구절에서 알 수 있듯 가을이 배경이다. 그럼에도 소나기 내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여름 같고, 설레는 첫사랑의 감성에 또 얼핏 봄 같기도 하다.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오월(7~8일) 개최한 ‘2015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엔 낯익은 문인들이 등장했다. 박목월, 서정주, 황순원이 그들이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해방 이후 문단을 이끌어 온 한국 문학의 거두였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태어나 한글로 작품 활동을 시작,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유명 문인이자 대학 강단에 선 교수들이었다. 박목월은 한양대, 서정주는 동국대, 황순원은 경희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각 대학은 올해 들어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쳐왔다. 2월 말엔 동국대에서 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 행사가, 지난달 말엔 한양대에서 박목월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렸다. 경희대는 3~5월 매월 말 소나기마을이 있는 경기도 양평군과 함께 ‘소나기마을 첫사랑 콘서트’를 마련해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시대의 아이콘이자 대학의 브랜드였다. 해당 대학을 대표하는 문인 교수에게는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었다.
서정주의 제자이자 연구자인 윤재웅 동국대 교수(국어교육과)는 “당대 문사들 가운데 대학 교수들이 많았다. 그 자체가 대학 문학의 브랜드였다”며 “동국대 서정주, 경희대 황순원, 한양대 박목월 등의 구도가 형성됐다”고 회고했다.
박목월의 가르침을 받은 박상천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도 “1970년대 대학생활을 했는데 문인과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게 대접받은 시대였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박목월 시인이 교수로 있어 한양대 국문과에 입학했다는 학생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당시 문인의 역할과 위상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황순원문학촌장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춘원 이광수 이래 문인은 ‘민족의 교사’였다. 그래서 문인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아주 높았다”면서 “지금은 문인이 그런 역할을 하진 않는다. 짐을 내려놓고 함께 즐기는 위치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인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대학 교수들에게 요구되는 연구·교육의 기능적 측면보다 상위 역할, 즉 ‘전범(典範)으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교수였던 셈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로 묶이는 시인 박두진은 연세대, 조지훈은 고려대 교수를 지냈다. 소설가 김동리는 중앙대에 흡수 통합된 서라벌예술대 학장까지 역임했다.
문인 교수들의 색채가 짙었던 이들 대학에서도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다. 오는 23일 연세대에서 ‘박목월·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다음달 13일 중앙대에서 ‘100주년 탄생 작가 박목월·서정주·황순원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 15일 ‘제자 3인이 말하는 스승 박목월·서정주·황순원’ 기사로 이어집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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