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마르 시몬슨·엠마뉴엘 로젠 지음 / 청림출판 / 280쪽 / 1만5000원
[ 김보영 기자 ]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거의 똑같은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상품 정보를 알려주는 특별한 버튼이 있다는 점만 다르다. 어느 상품이든 구입하기 전에 이 버튼을 누르면 상품의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상품의 브랜드 이미지나 소비자의 사용 경험, 광고 등은 빛을 잃는다.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도움이 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품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 소비자는 비교 결과에 따라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면 될 뿐이다.
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의 시장은 어느 때보다 이 가상세계와 닮아 있다. 온라인 미디어와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들어가보면 특정 상품에 대한 평가가 쏟아진다.
덕분에 소비자는 물건을 사기 전 미래의 사용 경험을 세밀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 A사의 노트북을 사용했는데 괜찮았다”는 경험에 의존해 A사 신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A사 새 노트북의 발열 문제가 심각하다”는 소비자 평가를 보고 다른 제품으로 눈을 돌리는 식이다.
절대가치는 소비자가 제품을 실제 사용할 때 경험하게 되는 품질이나 가치를 말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이타마르 시몬슨 교수와 입소문 마케팅 전문가 엠마뉴엘 로젠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존 마케팅 이론의 신봉자였다. 정보화 시대의 변화를 관찰하던 이들은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있던 마케팅 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보고 《절대가치》를 함께 썼다.
예전에는 제조사가 동일한 상품군에서 비싼 제품을 새로 내놔 저렴한 제품의 판매를 늘리는 방법을 종종 썼다.
시몬슨 교수는 1992년 소비자의 구매 행태에 관련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169달러와 239달러짜리 미놀타 카메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또 다른 그룹에는 469달러짜리 카메라를 추가해 세 개의 카메라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중간 가격대인 239달러짜리 카메라는 두 번째 그룹에서 훨씬 인기가 높았다. 이처럼 소비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는 경향을 일컫는 ‘타협 효과’는 한동안 마케팅업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12년 시몬슨 교수가 제자인 탈리 라이히와 함께 온라인 쇼핑에 대해 같은 연구를 진행했을 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참가자에게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제품 정보와 가격, 사용 후기 등을 먼저 보여준 뒤 두 그룹으로 나눠 카메라를 제시하자 타협 효과는 완전히 사라졌다. 1992년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가격 정보에 의존해 상대 평가를 했다면, 2012년 실험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근접한 절대 평가를 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제조사가 소비자를 조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저자들은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마치 시속 100마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누군가에게 최면을 거는 행위와도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양한 변수를 조합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들은 이를 ‘인플루언스 믹스’라고 부른다. 변수는 개인의 경험과 믿음 등이 반영된 ‘P’, 지인이나 전문가 등의 평가인 ‘O’, 기업의 마케팅 메시지 ‘M’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상품 정보가 투명한 시장에선 O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M의 영향력은 감소한다. 개인적인 선호도가 많이 반영되는 제품은 P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진지한 문제 제기에 비해 해답이 부실한 점은 다수의 경영서적이 나타내는 태생적 한계다. 《절대가치》도 새로운 마케팅 전략 수립을 권하지만 조언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절대가치 트렌드의 걸림돌이 되는 평가 조작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님을 강조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며 정보화 시대 난관에 봉착한 마케팅 현장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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