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의 '셰일 죽이기'에 油價 110→40달러선 폭락
재고 쌓였지만 최근 60달러선 반등…변동성 확대될 것
에너지산업 구조조정 서둘러 시장대응력 강화해야
"원유시장은 공급과 수요 모두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다
공급과 수요의 작은 변동에도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적극적인 조정자가 없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손양훈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
원유시장 움직임이 현란하다. 작년 하반기에는 짧은 기간에 배럴당 110달러(두바이유 6월23일 111.23달러)를 넘었던 원유가격이 반값 이하로 뚝 떨어졌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모두 어느 정도 물량이 남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강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어 올 상반기에는 40% 가까이 반등해 60달러 선을 회복했다. 어떤 시장 분석가도 이를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했다. 지난 가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감산에 합의하지 못했고 원유 재고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데도 유가는 다시 상승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랜 기간 국제 원유시장을 지배해 온 질서가 있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이 추구하는 국제정치적 타협 구조하에서 OPEC이란 원유카르텔이 가격을 조정하는 구조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증산하고, 반대로 원유가격이 내리면 감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물론 한국과 같은 수입국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가격이 내릴 때는 OPEC이 주도해 감산에 합의한다. 그래서 시장에 물량이 부족해 가격이 다시 올라가면 감산해서 줄어든 원유판매대금을 보충할 수 있다. 국제 원유카르텔로서는 가격이 하락할 때 감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수입국 입장에서 보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지만 야속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시장을 안정시키는 순기능도 크기 때문이다. 과거 국제정치 변동과 수급 상황에 따라 불안정하고 어려운 기간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조정기능이 작동해 원유시장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래서 원유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나라들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수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수긍하는 이 질서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번 OPEC 회의가 이례적이었던 이유는 원유가격이 추락하고 있는데 감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산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처럼 보이는 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OPEC 손 벗어난 국제원유가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시기에도 유가는 급락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감산 합의를 통해 유 〈?다시 상승했다. 당시에는 석유수출국 카르텔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감산을 해봐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남 좋은 일만 하게 된다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OPEC 국가들이 어렵게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시장에 새 사업자들이 나타나 시장만 빼앗아가고 가격은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절감하게 됐다.
그 배경은 지난 수년 사이에 원유 생산자들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다. 비전통 에너지인 셰일가스다. 수년간 지속된 고유가 과정에서 나타난 기술집약적 경쟁자는 순식간에 시장을 휘저어 놓았다. 산유국들이 두려워하기에 충분한 양의 원유와 가스를 생산했고 시장의 변화를 불러왔다.
적극적 조정자 없는 새 질서
원유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옛날과 같이 감산해 가격을 돌려놓을 수 없게 되자 산유국들은 유가 하락을 수수방관하고 생산단가가 높은 공급자들이 먼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현재까지는 일정 부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가스에 대한 투자가 주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담합해 물량을 조절하는 대신 시장에 맡겨버리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이란 가격이 내리면 공급이 줄어들고 반대로 수요는 늘어난다.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은 원유라 하더라도 결코 시장의 원칙을 피해갈 수 없다. 공급물량을 조절해 가격을 통제하는 과거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질서는 종말을 고했고, 앞으로는 시장에 맡기고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극적인 조정자가 사라진 원유시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질서가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게 될지 가늠하기 매우 어렵다. 아직은 시간이 더 지나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기관들의 예측이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는 과거처럼 산유국들이 똘똘 뭉쳐 고유가로 몰고가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원유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유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모두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공급이 조금 늘어나면 급락하고, 수요가 조금만 늘어나도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고 있다. 적극적인 조정자가 없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원유가격은 에너지와 자원 모두에 걸친 변화를 대표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석탄과 천연가스 같은 화석에너지, 더 나아가 철광석이나 구리 같은 지하자원이나 목재와 면화 같은 산업의 기초가 되는 원료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유가격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원유는 자원을 생산해 공급하는 프로세스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만, 자원을 활용하는 경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막대한 규모의 원유 거래가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을 주도하기도 하며, 상품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투기 대상이기도 하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원유가격 변동 위험에 100% 노출돼 있다. 그래서 더욱 주목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최선의 해법
세계의 에너지산업은 사활을 걸고 기존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다. 모든 에너지 프로젝트를 재평가하고 있으며 과감한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각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정책 ?재점검하고 있다. 에너지산업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기능이 활성화되도록 해 외부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누구에게도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쉬울 리는 없다. 그러나 그게 국제 에너지 시장이 급변하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다.
손양훈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