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 들고 중국行…칭다오서 수산물유통 시작
"그의 생선은 믿는다" 호평…中전역에 700가지 식품 공급
기회 왔을 때 시장 늘리자…수입·통관 등 일관체제 강점
상하이·광둥·선양 진출 성공…연내 충칭에 네 번째 지사
[ 박수진 기자 ]
곽동민 씨(46)는 2003년 봄 중국 칭다오로 건너갔다. 다니던 회사(해태상사)가 망하자 새 일을 찾아 해외로 나간 것이다. 손에 쥔 돈은 고작 400만원. 식품 유통업계에서 8년 동안 근무하며 잔뼈가 굵었으니 식품 유통사업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넉 달간 방황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터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시장이 ‘올스톱’되다시피 한 탓이다. 고국 쪽을 바라보면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을 때 하늘이 마침내 손을 내밀었다. 사업 자금을 보태겠다는 지인이 나왔고 사스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현지인 두 명을 고용해 ‘해지촌’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3만위안(약 600만원)짜리 중고 봉고 糖?사서 새벽마다 부두로 나갔다. 꼼꼼하게 고른 ‘물 좋은 생선’을 봉고차에 실어 칭다오 시내 식당과 가게에 공급했다. 2년여 동안 그렇게 하자 칭다오 부두와 식당가에서는 어눌한 중국어 발음의 성실한 한국인이 대는 생선의 품질이 좋다는 얘기가 돌았다. 신뢰를 얻자 사업은 용의 등을 올라탄 듯 뻗어 나갔다.
12년 동안 쌓은 거미줄 유통망
그로부터 12년. 해지촌은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국 식품 유통업체로 자리 잡았다. 작년 350억원 규모이던 매출이 올해는 400억원가량으로 커질 전망이다. 매출의 10% 정도가 순이익이다. 사업 성공의 비결은 거미줄 같은 유통망에 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할 때 자사 제품을 중국 유통업체에 판매한다. 한국에서 제품을 수입해 통관 절차를 밟아 현지 매장에 배달하는 유통망을 가진 업체는 드물다. 더러 있어도 현지인과 손이 닿아 있는 중국 동포 기업이 대부분이다.
해지촌은 현재 칭다오와 상하이 광둥 선양 등 중국 네 곳에 냉동 물류센터를 두고 현지 4000여개 마트와 1500여개 식당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 직접 제품을 나르기 힘든 지역엔 150개 대리점을 통해 물건을 댄다. 이런 촘촘한 망을 통해 3만여개 중국 현지 매장에 제품이 들어간다. 뱅가드 자스코 올레 등 대형마트도 포함된다.
이 같은 유통망은 곽 사장이 12년간 한 발 한 발 뛰어 만든 자산이다. 대기업도 부러워하는 네트워크다. 해지촌은 이 망을 통해 △고등어와 조기 갈치 등 냉동 생선 △만두 어묵 등 냉동 가공식품 △라면 김 소시지 등 일반 가공식품 등 700여가지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의 22개 식품회사에서 500여개 식품을 수입하고, 중국 현지 14개 업체로부터 200여가지 제품을 납품받는다.
집념에 ‘사업운’까지
사업은 쉽지 않았다. 현지 유통업체들의 ‘텃새’가 심했다. 해지촌이 거래처를 어렵게 뚫어 놓으면 기존 대형 납품업체들이 식품점으로 달려가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식품점 주인을 만나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한 곳 한곳 고객사를 늘려갔다.
곽 사장은 칭다오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2008년 상하이 지사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칭다오에서 더 튼튼하게 자리 잡고 가도 늦지 않다는 얘기였다.
곽 사장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하이 시장에 대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만난 현지 식품점주들은 “한국 식품 반응이 좋다. 물건을 대달라”고 주문했다. 상하이 물류센터를 내고 3개월 동안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유아 6명이 사망하고, 30만명이 쓰러진 ‘멜라닌 분유’ 사태가 터진 것. 곽 사장은 “멜라닌 사태 후 한국 식품을 찾는 거래처가 크게 늘어 새 지사가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두 번째 지사를 광둥에 냈다. 이때도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경쟁하던 일본 식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어린이 간식용 소시지(진주햄 천하장사)가 대박을 터뜨렸다. 월 5000달러 수준이던 소시지 판매량이 후쿠시마 사태 후 월 50만달러가량으로 순식간에 100배 이상 증가했다.
2013년 선양 지사를 냈을 때도 기회가 왔다. 시진핑 주석 취임 후 불법 식품에 대한 세관검사가 강화된 것. 곽 사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식품은 대부분 통관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지촌은 처음부터 적법한 절차를 따랐고, 불법 유통상품이 시장에서 철퇴를 맞자 해지촌 매출이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해지촌은 연내 내륙시장 진출을 위해 쓰촨성 충칭에 네 번째 지사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해 내년께 한국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진출 추진하던 해지촌 '상표권 분쟁'
해지촌은 최근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다. 경위는 이렇다. 곽동민 사장은 지난해부터 한국 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보다는 한국에 물류 거점을 두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진출을 위한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회사 설립을 위한 첫 단계로 상표등록을 하려고 보니 이미 해지촌이라는 상표(로고 포함)가 특허청에 출원된 것. 해지촌이 중국에서 특허 등록해 사용하고 있는 상호와 똑같은 로고였다.
다행히 출원 공고기간(상표 등록에 대한 제3자의 이의신청을 받는 기간)에 이를 발견해 대응할 수 있었다. 해지촌은 특 柴뼁?상표 출원금지 신청을 내놓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곽 사장은 “해지촌이 그만큼 인지도가 생겼다는 면에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동남아 진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점에서 당황스럽다”며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은 이런 법률적인 문제가 터지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이 허비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전경능 법무법인 지엘 변호사는 “특정 기업의 사업을 방해하거나 고가 재판매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사이버스쿼팅’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스쿼팅은 주로 유명 기업이나 단체의 이름과 상표, 인터넷 도메인을 영리 목적으로 선점하는 행위를 뜻한다.
곽동민 해지촌 사장은
△1969년 전북 옥구 출생 △1996년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해태상사 입사 △2000년 해태상사 퇴사(법인 청산) △2000년 하이티상사 공동설립 △2003년 칭다오 해지촌 설립 △2015년 충칭 사무소 설립(예정) △2016년 한국 법인 설립(예정)
칭다오=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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