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찾은 임진각, 북한 고향 마주하니 뭉클"

입력 2015-05-18 20:50  

나누는 삶
홀몸 어르신들 봄소풍…서울 정릉 개인택시기사들의 '재능기부'

고령에 몸 불편한 노인들 모시고 1980년부터 '특별한 봄날' 선물
"버스타기도 힘든데…고마울뿐"



[ 마지혜 기자 ]
지난 13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성북구 정릉1동 자치회관 앞 사거리. 꽃무늬 모자와 선글라스 등으로 한껏 멋을 부린 할머니, 판판하게 다린 양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 등 45명의 어르신이 속속 모여들면서 조용한 주택가가 모처럼 북적였다. 이날은 1년에 한 번 정릉1동에 거주하는 택시기사들이 쉬는 날을 맞춰 동네의 홀몸 어르신을 모시고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일대로 봄소풍을 가는 날. 줄지어 늘어선 택시 15대는 어르신들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사 이은청 씨(69)는 차를 길가에 대자마자 손걸레를 꺼내들었다. 와이퍼를 세우고 앞유리의 먼지를 훔치고, 차 옆면도 꼼꼼히 닦았다. “차에서 광이 난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어르신들을 모시는 특별한 날인데 아무렴 번쩍번쩍 빛이 나야죠”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행사의 주인공인 어르신들은 정릉1동에 사는 65세에서 85세 사이 노인이다. 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다. 고령에 몸이 불편한 데다 자식들과도 연락이 잘 안 돼 혼자 힘으로는 나들이 한번 가기 어렵다. 이날 행사에 봉사자로 나온 주민자치위원회 총무 엄삼순 씨(61)는 “날씨가 따뜻해지자 동네에서 마주치는 할머니마다 ‘나들이 언제 가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어르신의 기대감이 컸다”고 전했다.

눈두덩이에 옅은 분홍색 아이섀도를,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곱게 넘긴 송양례 할머니(71)는 소녀처럼 들뜬 듯했다. 송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소풍에 함께 가겠느냐는 전화를 해와 모처럼 나왔다”며 “늘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와 바람을 쐬니 마음이 훨훨 나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는 김점덕 할머니(67)는 “몇 년 전 다리를 다쳐 버스를 타고 내리기가 힘든데, 택시기사들이 직접 동네에서 데리고 나와주고 집에 데려다주니 감사하다”고 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산책 후 인근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의 다음 행선지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전시실을 돌아보는 가운데 한 할아버지는 전망대 망원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평안도 출신으로 1951년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이정삼 할아버지(85)였다. 이 할아버지는 “20여년 전 딸과 함께 온 뒤 처음 다시 찾아왔는데 이제 눈이 침침해 망원경에 눈을 대도 먼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래도 고향 땅을 마주하니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어르신에게 ‘특별한 봄날’을 선물하는 이 행사는 1980년 정릉1동에 사는 택시기사들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됐다. 20여년 계속되던 행사는 2003년부터 9년간 중단됐다. 초기 멤버들이 이사를 가거나 택시 운전을 그만두면서다. 그러던 중 창단멤버인 남상준 씨(63)가 2012년 지역 새마을협의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모임을 추스르고 엄삼순 당시 부녀회장이 손을 거들면서 부활해 올해로 재개 4년째를 맞았다. 남 회장은 “사람들은 모처럼 쉬는 날 봉사를 하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외롭게 지내는 어르신에게 콧바람 쐴 기회 한 번 드리면서 얻는 보람이 표현 못할 만큼 크다”고 말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어르신들을 돕는 주민들의 손길에서 십시일반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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