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엑셀·쏘나타 등 개발 지휘
90년대 후반 터키·인도 공장 건설
[ 홍선표 기자 ]
20일 오전 10시 경기 양평군 양수리에 있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묘소 인근. 정 명예회장의 부인인 박영자 여사와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현대가(家)를 포함해 참석자 100여명이 모이자 흰색 천에 가려진 화강암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화강암 정면에는 정 명예회장의 웃는 모습이, 뒷면엔 그의 분신인 ‘포니’ 자동차가 새겨져 있다. 화강암 한쪽에는 “그 길을 달리는 내 차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정 명예회장의 어록을 새겨 자동차산업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21일로 타계 10주기를 맞은 정 명예회장을 기리는 추모 조형물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정 명예회장은 초기 한국 자동차산업을 이끌며 ‘포니 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1967년 현대자동차 사장에 취임한 그는 1975년 국내 첫 양산형 고유 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엑셀 쏘나타 ?1980~1990년대 인기를 끈 차종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터키와 인도에 해외 공장을 준공, 한국 자동차산업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7년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자동차 사업을 위해 “미국 포드자동차와 접촉하라”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를 받은 뒤 32년간의 자동차 인생을 시작했다. 1968년 포드에서 제공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의 첫 모델인 코티나를 생산했다. 하지만 국내 실정에 맞는 소형차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고유 모델 개발에 뛰어들었다. 폭스바겐의 골프 등을 디자인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디자인을 맡기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국민 공모로 진행한 모델명 선정에 약 6만장의 응모 엽서가 들어오는 등 관심도 뜨거웠다.
현대자동차 디자인 부사장을 지낸 박종서 씨는 “1973년 1차 오일쇼크 직후에 독자모델 개발에 나선 것은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당시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도전정신은 2005년 설립된 포니정재단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재단 설립 이후 지금까지 국내 학생 280여명과 베트남 학생 440여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기초학문의 토대 없이는 산업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그의 뜻에 따라 신진 학자들에게 매년 연구비와 출판비도 지원하고 있다. 2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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