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조차 사각지대 구멍 커
맞춤복지에 경제구조개혁 박차를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이 국민연금으로까지 번진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권이 하는 일이 항상 그렇다고 냉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선진국에 가까이 와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연금뿐 아니라 복지제도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복지제도의 문제는 무엇인가.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법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는 한편으로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원 같은 공공 내지 준공공 부문 종사자에다 소수의 대기업 종사자를 더한 그룹과 다른 한편으로 다수의 소기업·영세기업·자영업자로 구분되는 ‘이중구조’로 돼 있다.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의 한국엔 복지가 없다시피 했다. 있다면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원 연금 같은 사회보험이었는데, 그것은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보험을 한정함으로써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재정을 성장에 집중 투입해 일자리를 대거 창출함으로써 ‘최대 복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중구조가 만들어졌다.
1980~90년대에는 사회보험이 확대됐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마련해서 제도적으로는 사회보험체계를 다 갖췄다. 그러나 그 적용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다수의 소기업·영세기업·자영업자를 사회보험으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후 심화됐다. 위기 직후 수십 만명이 대기업과 금융회사에서 영세 자영업 등으로 밀려났다. 그 후 십수 년간 대기업과 여타 기업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거기에다 비정규직 고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금 국민연금 수령 대상 연령 인구 중 35% 정도만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데는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문제가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예컨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한 정규직은 2004년 72.5%에서 2014년 82.1%로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은 37.5%에서 38.4%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런 상황은 건강보험과 고용보험도 마찬가지다.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공공부조’가 빈약한 데서도 드러난다. 병약자·어린이·결손가정 등을 돕는 공공부조에서 한국은 지각생이다. 외환위기 후 빈곤층이 급증하자 2000년에 국민기초생활법을 제정하면서 비로소 첫발을 뗐다. 지금 청와대 경제수석인 안종범 교수의 연구에 피玖?기초생활보장에 대한 정부 지출은 2005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6%였는데 한국은 0.3%에 불과했다. 2011년 통계를 보면 예컨대 병약자 등 노동 무능력자에 대한 현금성 지원에서 OECD 평균은 1.9%인데 한국은 0.4%다.
한국이 이런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08년 기초연금을 도입했고, 현 정부 들어 수령액을 늘렸다. 그러나 사각지대 해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일각에서 기초연금 강화 쪽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공공부조도 최근 ‘송파 세모녀법’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부양의무자 제한이 많이 남아 있다. 과세에서 부동산이나 금융소득에 대해 분리과세하면서 기초생활보장은 합산해서 지원하는 것은 불공정해 보인다.
물론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을 늘리는 데도 부정 수급 등 각종 문제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온갖 논란에 휩싸인 복지정책의 ‘방향’을 잡는 일이다. 방향을 잡는 데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요체다. 그 우선순위의 기준은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둬야 한다. 그러는 한편 경제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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