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투자 감소·시장혼란 부를 수도
[ 김은정 기자 ]
‘오일머니’를 등에 업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던 중동 국부펀드들의 힘이 빠지고 있다. 최근 1년 새 유가가 반토막 나면서 국부펀드의 주요 자금줄인 원유 판매대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돈줄이 마르기 시작한 산유국은 국부펀드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하고 있다. 저유가와 강화된 규제로 주식, 채권, 대체투자시장에서 국부펀드의 투자 활동이 위축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 악화 산유국은 자금 인출
20일(현지시간) 세계국부펀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세계 30여개 국부펀드의 부동산 매입 등 직접 투자 규모는 1124억달러(약 122조9990억원)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 2013년에는 전년 대비 181%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유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58.98달러였다. 이달 들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공급 과잉 우려로 작년 고점 대비로는 45% 떨어졌다. 산유국이 평균 재정 손익분기점으로 여기는 75달러도 크게 밑돈다. 세계 국부펀드 자산은 작년 말 기준 7조570억달러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원유 판매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조지 아베드 국제금융협회 아프리카·중동 책임자는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줄고 있다”며 “산유국의 경제사정이 악화돼 정부가 국부펀드에서 일부 자금을 인출하는 사례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BNP파리바는 유가가 지금보다 높은 배럴당 70달러 수준(원유 생산량에 변동이 없을 경우)으로 연말까지 유지돼도 산유국의 원유 판매 수입이 올해 3160억달러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정부연기금에 올해 유입되는 자금 규모는 250억크로네(약 3조6115억원)로, 작년 1470억크로네에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데이비드 스피겔 BNP파리바 전략가는 “국부펀드의 수입 감소는 앞으로 몇 년간 금융자산 수요를 둔화시킬 수 있다”며 “산유국이 투자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 규모를 키우기보다 유동성 흡수에 나서는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운용 규제 강화로 투자 위축 가능성
저유가가 지속된 1990년대 이후 가장 큰 재정난에 직면한 산유국은 국부펀드의 자산 운용과 수익률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통상 국부펀드는 자산운용 수단과 수익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유가가 빠르게 상승할 때조차 별다른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국부펀드를 최초로 만든 쿠웨이트는 두 달 전 국부펀드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산 운용의 부당 행위와 부적절한 투자 행위를 조사 중이다. 쿠웨이트 국부펀드의 운용 자산은 5480억달러다. 국부펀드조사위원회는 국부펀드가 적정한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했는지,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결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따진다.
바레인 역시 국부펀드조사위원회를 꾸리고 110억달러를 운용하는 국부펀드 조사에 들어갔다. 다른 산유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이터통신은 “저유가로 정부가 국부펀드의 운용 활동에 더 예민해졌다”며 “복지 혜택 축소를 우려하는 국민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목적도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산유국의 이런 움직임이 국부펀드의 자유로운 투자 활동을 제약하고 투자 결정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부펀드는 과거 선진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했지만 몇 년 전부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 파생상품, 사모펀드, 헤지펀드, 인수합병(M&A) 시장으로까지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필 플린 프라이스퓨처스그룹 선임연구원은 “자산운용회사, 보험회사 등 다른 기관투자가들의 활동을 봤을 때 국부펀드의 투자 활동 위축이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부펀드는 투자 전략이 비슷해 갑작스럽게 투자정책이 바뀌면 특정 자산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쳐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부펀드 자산의 25%가량은 신흥시장에 투자돼 있다.
■ 국부펀드
sovereign wealth fund.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과 달리 정부가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투자용으로 출자해 만든 펀드다. 산유국에서는 주로 원유를 수출해 벌어들인 ‘오일머니’가 활 逾홱?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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