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해야 가계 통신비 줄어든다

입력 2015-05-25 20:48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론 확산

인가제, 독점 견제 못하고 후발업자 보호수단으로 전락
요금 경쟁 통한 소비자 후생 외면…사전적 차별 규제
한국에만 있는 '단통법'도 폐기해야 실질적 통신비 절감

그동안 요금제를 단순화하지 않았던 것도
통신업체들이 통신요금 인가제라는 정부의
보호망을 악용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




통신요금 인가제에 대한 실효성은 오래전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돼 왔다.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억제하면서 요금제 경쟁을 유도해 통신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단통법’이 요금 경쟁은커녕 되레 단말기 가격만 올려놓으면서 통신요금 인가제에 대한 비판이 더 거세지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에는 사업 규모 및 시장 점유율 등이 일정 수준에 있는 기간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소위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비대칭 규제(차별 규제)로서 사전 규제에 해당한다.

역사적으로 통신시장의 가격 통제는 통신사업 독점 상황에서 가격 상한에 규제를 뒀지만, 한국은 지배적 사업자가 후발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지나치게 가격 인하를 하는지에 관한 규제에 가깝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견제해 유효 경쟁 구도를 만들려는 취지였지만 지금은 후발사업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2005년에도 통신요금 인가제가 사업자 간 요금 인하 경쟁을 제한하고 유효 경쟁 정착에도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독과점적 성격이 강한 국내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의한 요금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후발사업자들의 높은 가격을 보호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기존 요금의 인하는 신고하도록 부분 개정했지만, 신규 요금제는 여전히 인가받도록 해 다양한 요금제를 통한 혁신 경쟁을 제한했다.

국내 통신사들은 최근에야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고 있다. 해외에서는 스마트폰 도입과 함께 수년 전에 순수 종량형과 통합요금제란 단순 요금 체제로 옮겨갔지만 한국은 기본료, 통화료, 데이터 요금 등으로 세분화된 복잡한 요금제를 유지해 소비자가 어떤 요금제가 유리한지 비교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이 이제야 부분적으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도입하고 그동안 통신요금제를 단순화하지 않았던 것도 통신업체들이 통신요금 인가제라는 정부의 보호망을 악용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외적이어야 할 비대칭 규제

시장경제에서 사전 규제 특히 비대칭 규제는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규제의 목적이 합당하고 실효성이 있는지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 우선 비대칭 규제는 선발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의 개연성이 크고, 약탈적 가격으로 후발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경쟁 환경이 크게 악화해 사후 규제만으로는 회복되기 어려울 경우에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현재 미래부 장관이 고시한 1위 업체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 따져야 한다. 미국 통신위원회(FCC)는 선도업체의 시장 점유율 쏠림이 계속 심해지고 있는지, 수요와 공급이 탄력적인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따진다. 그런데 국내 1위 업체인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정체 내지는 낮아지고 있다. 후발업체들의 공급 능력도 넘쳐나는 등 공급의 탄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SK텔레콤은 선진국의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고 할 수 없다.

SK텔레콤이 약탈적 가격 제도로 후발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등 시장 구조를 회복 불능의 독점적 상태로 만들 수도 없다. 국내 무선단말기는 포화 상태다.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약탈적 가격만으로는 다른 사업자의 고객을 빼앗아 상대 업체를 퇴출시킬 수 없다. 특히 후발업체인 KT는 유선망의 지배적 사업자여서 SK텔레콤이 약탈적 가격을 시행하면 유무선 망 연결의 요금 인상이나 연결 제한을 요구할 수 있는 등 대응 수단이 있다.

시장지배력에 대한 오해

둘째, 시장경제에서 규제는 가능한 한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는 요금 인가를 위해 사업자에게 모든 요금산정 근거자료를 제출토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요금제와 관련한 예상 수익 등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도 포함돼 있다. 이는 ‘필요 최소한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셋째, 사전 규제는 원칙적으로 사후 규제 수단이 없는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모든 시장에서 약탈적 가격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사후 규제할 수 있다. 통신은 주파수 사용 권한을 일정 기간 허용하는 것이므로 불공정 기업에 대해서는 주파수 사용의 갱신이나 배정 시에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넷째, 정부는 통신요금이 원가(공급비용)와 공정한 경쟁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해 산정했는지, 소비자가 비용 부담이나 이용 측면에서 부당하게 제한받거나 차별 대우를 받지는 않는지 심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은 전기나 철도처럼 하나의 국가 독점기업이 운영하며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과는 상이한 원가 구조를 갖고 있다. 사업자별 결합상품 등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인프라는 동일하기 때문에 개별 서비스의 객관적 원가 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책당국이 요금제 인가의 적정성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는 애초에 요금 인가제를 도입한 나라가 없고 신고제마저 실효성이 없어 폐지하는 등 요금에 관한 규제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통신요금 인가제는 그 논리적 타당성을 찾기 힘들고, 세계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규제 완화나 개혁을 통해 경쟁 업체를 늘리는 방향을 택했지, 소비자 후생을 희생시켜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발업체를 보호하는 이 같은 규제를 시행한 예가 없다.

단통법도 함께 폐기해야

통신요금 인가제는 사업자 간 치열한 경쟁으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이 규제의 방패 뒤에 숨어 가격 경쟁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는 매우 부당한 것이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사실 탄생해서는 안 되는 규제로 하루라도 빨리 폐지하는 게 맞다.

단통법도 폐기해야 마땅하다. 단통법은 사업자의 단말기 가격 경쟁을 차단하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과 요금 할인을 연동하는 등 정부가 통신요금 할인폭까지 규제하는 근거다. 통신요금 인가제보다 더 강력하게 단말기 제조사 및 통신사업자의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 단통법의 폐지나 개정 없이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하는 것만으로는 실제적인 통신비 절감을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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