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완 기자 ] 며칠 전 사업상 어려움으로 한국을 떠날 결심까지 한 중소기업인 두 명을 각각 만났다. A사장은 10년 이상을 첨단 소재 개발에 매달려 제품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시장을 개척하지 못해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는 이 기술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미래 기술이라고 판단해 사업적 연관이 있는 대기업에 투자를 요청했으나 “회사가 구조조정 중이어서 투자는 안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결국 회사와 보유 특허를 모두 중국에 넘기기로 하고 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 구조조정 땐 투자 안 해
B사장은 액화천연가스(LNG)선 제조와 관련한 특허를 갖고 있는데 한국의 조선업체들로부터는 냉대를 받았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회사가 어려워 언제 당신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만일 기술을 제공한다면 우리에게만 줘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결국 B사장은 중국 및 일본 조선업체들과 기술 제공 협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토로한 문제는 ‘한국 대기업의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이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투자는 아예 하지 않겠다고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 기술이 회사를 위해 필요한지 여부도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구조조정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구조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지금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줄이는 게 아니라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기 혁신이다. 무엇을 포기할지 못지않게 어디에 집중할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경영학자들은 조언한다. 일본의 도시바나 히타치가 구조조정의 전형으로 다시 거론되는 것도 기존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면서 각각 원자력과 인프라사업이라는 새 분야에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많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다운사이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력을 감축하고, 비용 지출을 줄이고, 비(非)수익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한다. ‘미래 먹거리’라고 칭송을 받던 사업분야도 당장 수익을 못 내면 정리 대상이 되기 일쑤다.
미래 성장 방안이 더 중요
그런 점에서 삼성과 한화의 구조조정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삼성은 큰 위기가 아닌데도 흑자를 내는 방위산업과 화학 부문을 매각했다. 사업구조를 전자 금융 중공업 등으로 단순화하고 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삼성으로부터 화학과 방산 부문을 인수한 한화는 바이오분야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구조조정의 원칙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 한화 못지않게 재계에서 관심을 끄는 구조조정 기업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계열사 경영진의 사표까지 받아 가면서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구조조정, 책임경영, 인사혁신, 거래관행, 윤리의식 등 5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구체적 쇄신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런데 회사 주변에서는 비수익자산을 일괄 정리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그래서 일각에선 ‘구조조정분과위’와 별도로 ‘미래성장분과위’ 같은 조직을 함께 만들었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포스코의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과거의 잘못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적 방안 마련에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김태완 < 산업부 차장 twkim@hankyung.com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