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무역구제 제도, 보호주의 수단으로 활용해선 안돼

입력 2015-06-01 20:39  

무역자유화 촉진하는 '메가 FTA'
자국산업 보호 기류도 함께 커져
정치 목적 보호주의 타파 노력해야
4일 '무역구제 서울국제포럼' 주목

홍순직 < 무역위원회 위원장 >



세계 주요국들은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해외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세를 내리고 무역자유화를 촉진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간 ‘메가 FTA’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반면 시장질서를 해치는 불공정한 수입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판정, 상계관세 조치 등을 통해 관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입품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값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 이익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 피해구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역자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런 논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거친 다음 1995년 마라케시 협정을 기반으로 세계무역기구(WTO)를 창설하는 결실을 거뒀다.

WTO 협정에는 반덤핑을 규율하는 장치가 포함돼 있다. 반덤핑 규정은 자유로운 국제무역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상대국 시장에 저가로 덤핑 수출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반영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보조금이 지급된 수입품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상계관세에 관한 ‘보조금 및 상계관세협정’도 포함됐다. 또 FTA에 따른 양허로 국내 산업 피해가 있을 것을 우려해 세이프가드 협정이 들어갔다. 이렇게 반덤핑, 상계관세 및 세이프가드를 통한 무역구제제도가 마련됐다.

세계 각 국가는 무역구제제도를 공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WTO 통계에 따르면 1995년 이후 반덤핑, 상계관세 및 세이프가드의 조사 개시 건수는 각각 4627건, 355건, 295건으로 반덤핑제도 활용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라고 할 수 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그리스 발(發) 경제위기 때 무역구제 조사 개시 건수가 예년과 달리 증가했다. 이처럼 무역구제 조사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은 자유화의 진전과 동시에 세계 보호무역주의 기류도 거세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불공정무역으로부터 자국 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WTO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무역구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역구제에 관한 WTO 규범은 상당한 재량이 발휘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각국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보호주의적으로 운용할 위험성이 내재돼 있다. 이런 위험성을 저지하려면 각국은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제도 운용의 투명성과 중립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국 간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 소통 기회를 확대해 공정무역을 통한 자유무역 실현에 기여하고 무역자유화에 역행하는 무역구제 남용을 막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무역구제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각국 기관들이 직접 만나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오는 4일 WTO와 공동으로 ‘2015 무역구제 서울국제포럼’을 연다. 올해로 WTO가 출범한 지 20년이 됐다. 무역구제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각국 대표들이 모여 WTO 무역구제제도의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발전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이와 함께 각국은 관련법과 제도운용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무역구제제도 발전을 꾀할 계획이다. 요즘 터키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의 스마트폰 수입에 따른 자국 산업 피해를 조사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긴급수입제한조치인 세이프가드제도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려고 한다.

홍순직 < 무역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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