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뽑는 기준 '도망 안 갈 사람'
비정규직에 4대보험 미적용…그만둬도 못 붙잡는 게 현실
고된 근무 뒤엔 짜릿한 쾌감
촬영 땐 식사 거르는 일 예사…방송 끝나고 이름 뜰 때 행복
다시 태어나도 방송작가
각계각층 사람들 만날 수 있어…시사다큐는 '사회의 창' 역할도
[ 공태윤 기자 ]
인공지능(AI)로봇이 인간의 많은 영역을 대신할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방송작가다.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27일 열린 잡콘서트 천직특강 ‘방송작가’ 편에 3인의 방송작가를 초대했다. 이들은 아파도 아플 수 없었던 막내작가 시절부터 프로그램 개편으로 갑자기 실직한 사연, 시청률 스트레스로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등 치열한 방송작가의 삶을 찬찬히 들려줬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방송작가는 고단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방송작가가 된다고 할 정도로 매력 있고 보람 있는 직업이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방송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강해”
“눈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능 방송작가 경력 10년차 최희진 씨(30)의 고백이다. 최씨는 “막내작가로 보낸 3개월 동안은 내내 울면서 다녔다”며 “아침마다 죽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에 치이길 바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KBS 연예가중계를 맡고 있는 최씨는 “힘든 시간을 이겨냈더니 지금은 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 돼 재방송 땐 저작권료도 받는다”고 말했다.
TV·라디오 방송 경력 21년차인 김정희 작가(45)도 “비록 진입 문턱이 낮아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며 “방송계는 오래 버티는 사람이 결국 강한 사람”이라고 맞장구쳤다. 김 작가는 대한민국 건축대전 입상 경력까지 있는 건축학도였지만 방송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현재 KBS1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매주 몰랐던 한국사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덧붙였다.
시사다큐 방송 경력 19년차 김유미 작가(43)도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TV에 나온 구성작가 모집에 ‘필’이 꽂혀 방송계에 발을 들여놨다. 당시 구성작가의 의미도 모른 채 부산에서 상경해 방송아카데미 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초기에 방송작가 일이 정말 재미있어 매일 방송국 소파에 누워 잤더니 청소 아주머니께서 ‘너는 집도 없느냐’고 핀잔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EBS 세계테마기행을 기획하고 있다.
막내작가 뽑는 기준은
최 작가는 “처음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보니 도망가지 않을 사람인가가 방송작가를 뽑는 기준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작가들은 서로를 ‘잡가’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만큼 챙겨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대본을 쓰는 것은 물론 자료 수집, 프로그램 진행, 출연자의 동선 마련 등 촬영 전반의 구성도 작가 몫이다. 그는 “소품을 직접 만들고 디자인도 해야 하니 만능은 기본이고 끈기는 필수”라고 말했다.
김정희 작가는 막내작가가 떠나도 붙잡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작가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요. 힘이 많이 들다보니 직접 얼굴 보고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작가는 양반 축에 속해요. 카톡·문자로 ‘못해먹겠다’고 통보하는 게 일반적이죠. 어느날 말도 없이 후배가 안 오길래 메일을 확인했더니 안부편지 하나 달랑 남겨두고 떠났더라고요.” 그는 “직장인은 집에 쉬러 가지만 우리는 집에 일하러 간다”고 했다.
김유미 작가도 현실을 인정했다. “우린 항상 을(乙)이에요. 정규직? 절대 없어요. 4대보험은 꿈도 꾸지 마세요. 간혹 외주 소속사 정규직 작가가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 있는 건 마찬가지죠.” 그는 1997년 처음 작가를 시작할 때 월 60만원을 벌었는데 19년이 지난 지금도 막내작가의 월급은 80만~12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방송작가는 주급으로 보수를 받는다).
맹장수술 후에도 대본 써야 하는 운명
작가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일까. 최 작가는 ‘일밤 몰래카메라’를 하면서 한 끼도 챙겨먹지 못해 남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500mL 생수를 ‘원샷’했던 아픈 기억을 꺼냈다.
그럼에도 그에게 방송작가는 역시 천직이다. “못 먹고 못 자고 발을 질질 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짜릿했어요. 프로그램의 맨 끝 자막에 이름 ‘최·희·진’ 석 자가 지나갈 때는 고생했던 아픈 경험이 싹 씻기는 행복이 몰려와요. 마약 같은 방송 맛에 아직도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별명이 ‘테순이’일 정도로 TV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김정희 작가는 작가 시절 하찮은 일의 소중함을 배웠다. “사연 모집에 당첨된 청취자에게 상품을 주면서 김치냉장고를 보내야 할 시청자에게 드럼세탁기를 보내는가 하면 한 사람에게 두 개를 다 보낸 동료도 있었어요.”
그는 시청자의 편지를 꼼꼼히 챙기는 작은 일에서 제작진으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계속 방송 일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어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프로그램이 끝나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김유미 작가는 ‘아파도 죽을 수 없는 게 작가의 운명’이라고 했다. “1998년 추적60분의 동료작가가 맹장이 터져 응급실에서 수술했는데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원고를 쓰더라고요. 부모님 임종을 못 보는 경우도 있어요. 작가는 미리미리 병원에 가고 평소 건강관리를 해놔야 팀에 피해를 주지 않게 돼요.”
다시 태어나도 방송작가 될 것
이들은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방송작가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최 작가는 방송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방송아카데미를 찾은 스무살 때를 떠올렸다. “중학생 때 신문반, 고교시절 방송반, 대학생 때는 단편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점수 맞춰서 간 대학인데 직업만큼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최 작가는 현재 방송일과 함께 중고교를 다니며 틈틈히 방송작가를 알리는 강연도 병행하고 있다.
김유미 작가는 “고되고 돈도 안 되는 방송작가 일이지만 방송 후엔 묘한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다큐 시사프로그램은 사회의 창 같은 역할을 해요. 정부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죠. 방송 후 온라인과 각종 매체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을 좀 더 밝게 바꾸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김정희 작가는 무슨 일을 하든 대우나 월급이 다를 뿐이지 힘든 건 비슷할 것 같다며 힘든 시기가 지나면 방송작가에겐 더 많은 자유가 있다고 했다. “방송을 하다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요. 바닥을 치고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나의 고난도 별 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경제학자들을 통해선 돈관리하는 방법도 배우게 돼요.” 그는 마지막으로 천직특강에 온 학생들에게 “방송작가를 절대 하지 마라”고 농담을 건넸다. “여러분이 작가가 되면 저의 경쟁자가 되잖아요. 저보다 잘나고 똑똑한 후배가 들어오는 게 싫기 때문이에요. 하하하.”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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