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반대', 중국엔 '침묵'…시민단체의 'FTA 두 얼굴'

입력 2015-06-01 21:47  

한·미 FTA와 너무나 달랐던 한·중 FTA

시위 횟수 19건 vs 4건
한·미땐 1만명 이상 참여 6건…집회 주도한 단체만 수백개
한·중땐 1000명 이상 단 3건, 주로 농민단체…대응 대조적

TPP 반대로 갈아탄 단체들
"반미 내세워야 운동 흥행"…파급효과보단 이념에 치중
협상 초기부터 노골적 반대



[ 김동현 기자 ]
‘19 대 4.’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1일 한국 중국 정부가 서명한 한·중 FTA에 각각 반대해 벌인 주요 시위 횟수다. 한·미 FTA에 비해 한·중 FTA가 조용히 진행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한·중 FTA가 한·미 FTA보다 5배 정도 크다(삼성경제연구소)는 분석이다. FTA 자체가 문제라면 파급효과가 더 큰 한·중 FTA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올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미 FTA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한·미 FTA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 일각의 반(反)미 정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조용했던 한·중 FTA

2006년 6월 1차 협상을 시작한 한·미 FTA는 10개월 뒤인 2007년 4월 타결됐다. 하지만 거의 5년 후인 2012년 3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반대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1차 협상 3개월 전인 2006년 3월 전국 270개 사회단체가 모여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조직했다. 7월 열린 관련 집회에는 3만7000여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2008년 6월 한·미 FTA에 따른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10만여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1만명 이상 대규모 집회만 여섯 차례였다.

한·중 FTA 반대는 한·미 FTA에 비교가 안 될 정도다. 1만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집회는 한 건도 없었다. 1000명 이상이 참여한 집회도 세 건 정도에 그쳤다. 한·미 FTA 반대 시위 때 수백개 사회단체를 망라했던 집회 참가 주체도 한·중 FTA 때는 주로 농민단체로 한정됐다.

한·미 FTA 반대에 참가했던 사회진보연대 관계자는 “최근 FTA 관련 활동은 농업단체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FTA 협상 진행을 연구하는 통상법 전공의 한 대학 교수는 “한·미 FTA 때 시위가 잦아 이후 이뤄진 유럽연합(EU)과의 FTA 때도 EU 측 대표들이 긴장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관련 시위에 고작 6명만 나와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TPP로 이어지는 ‘미국 반대’

한·미 FTA에 반대했던 시민단체는 지난해 한·미 FTA 범국본의 명칭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FTA 대응 범국민대책위원회’로 바꿨다. 한·중 FTA와 관련한 막바지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미국이 주도하는 TPP 반대운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한·중 FTA는 농업 부문이 낮은 수준에서 타결돼 한국의 피해가 적은 반면 한·미 FTA는 개방 폭이 넓어 파급력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 FTA 때는 상품 양허안 등 윤곽이 나오지 않은 협상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이 일었다. 한국 정부는 아직 TPP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솔직히 반미라는 ‘브랜드’를 달지 않으면 운동이 커지지 않는다”며 “반미가 아니면 FTA 시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 단체도 많아 이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중 FTA에서 TPP 반대로 돌아선 데는 이념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미 FTA 범국본에 참여한 사회단체 중 32개가 반미 관련 활동을 하거나 강령에서 미국에 대한 반대를 명시하고 있다. 일부는 아예 단체 이름에 반미를 붙인 단체도 있다. 전체 시민단체 중 이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이들이 반미 시위를 주도하면 다른 단체도 따르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 때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협상을 총괄했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FTA 반대를 주도한 인사들이 이후 광우병 시위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 건설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에도 나왔다”며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반미 성향의 인사들이 상당수 한·미 FTA 시㎰?참여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한·미 FTA 당시 반대 단체들을 분석해보면 무역자유화에 따른 불평등 확대를 우려해 반대하는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미국 자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시위에 나섰다”며 “TPP는 10여개 국가가 참여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반영되기 힘든데도 미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인식해 반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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