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 소액주주 반발에 인수작업 막판 진통…하림 '한국의 카길' 꿈 물거품 되나

입력 2015-06-02 21:46  

하림, 1.25대1 무상감자 추진…"주주들도 손해 분담 필요"

소액주주 "감자 이유없다" 반발…"부채비율 낮고 영업이익 호전"

사료 운송·유통·축산 등 통합…하림 '곡물 메이저' 꿈 무산 위기



[ 김보라 기자 ]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가 무산 위기에 처했다. 기존 주식에 대한 감자가 포함된 회사의 회생계획안 승인이 팬오션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하림도 오는 12일로 예정된 팬오션의 채권자 및 주주 등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계획안’이 승인되지 않으면 팬오션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감자 안 된다” 소액주주 집단 반발

팬오션은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사 부문 국내 1위 해운사다. 2007년에는 곡물수송량 세계 1위를 하기도 했다. 하림과 사모펀드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팬오션 매각 본입찰에 단독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금액은 1조80억원이었다.

하림은 이후 팬오션 재무제표 실사 등을 거쳐 인수를 하려면 사전에 1.5 대 1의 감자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부 채권단과 주주들이 반발하자 법원이 1.25 대 1의 중재안을 냈고, 팬오션은 이를 반영해 변경회생계획안을 내놨다. 팬오션은 12일 주주, 채권단과 변경회생계획안을 심리·결의하는 관계인 집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회생안 의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안이 통과되려면 채권자 3분의 2, 주주 2분의 1의 동의가 필요지만 이미 절반에 육박하는 주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생안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은 우호지분을 모아 변경회생안 부결을 추진 중이다. 팬오션 소액주주권리찾기 인터넷 카페는 소액주주 측이 주주의결권 행사를 위해 4500만주에 달하는 반대 지분을 확보했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이는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관계인집회 참석을 신고한 총 주식 수 1억500만주의 절반가량이다. 소액주주들이 산업은행의 지분 2788만주를 제치고 최대 의결권을 갖는 셈이다.

팬오션의 한 소액주주는 “20 대 1의 무상감자를 한 지 1년여 만에 또 감자를 추진하는 것은 주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구성 주주의 70% 이상이 감자안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하림 측은 팬오션의 개인주주 비율이 72.87%에 달해 우호지분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하림 관계자는 “팬오션의 회생과정에서 채권단이 손해를 보는 만큼 주주도 당연히 권리를 감축해야 한다”며 “만일 감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팬오션 인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림의 곡물 메이저 꿈도 무산 위기

업계는 인수 무산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팬오션은 지난해 흑자 전환했고, 올 1분기에도 약 58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은 선박 상각 처리, 일부 채무의 출자 전환 등 법정관리 과정에서 나타난 단기 성과와 유가 하락의 수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림이 인수를 포기하면 팬오션은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팬오션 매각공고 이후 하림그룹을 포함해 5개 업체가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예비실사 기간 중 최저 입찰금액이 발표되자 4개 업체는 본입찰을 포기했다. 만약 법정관리 상태가 지속되면 팬오션이 2023년까지 상환해야 하는 채무는 총 3조444억원에 달한다.

인수가 무산되면 김홍국 하림 회장(사진)도 “10년 내 카길(세계 1위 곡물 메이저)과 같은 곡물 메이저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는 당초 곡물 구입 및 운반, 축산과 가공,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닭고기 회사로 알려진 하림은 실제로 사료가 주력이다. 전체 4조8000억원의 매출 중 사료 부문이 1조4000억원, 닭고기는 1조1000억원이다. 이 중 사료 원료의 95%를 수입하고 있는데 원가의 20%가량을 운송비가 차지한다. 팬오션이 하림과 다른 기업의 공동 구매 물량 등을 합해 운송하면 연간 2조원의 안정적인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하림 관계자는 “인수 이후 팬오션의 관리종목 탈피, 기관투자가 증가, 유상증자 물량의 보호예수 등 주가 상승 호재로 주주들의 감자 손실이 이른 시일 내 회복될 수 있다”며 “소액주주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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