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행령은 국무회의서 공포하면 그만

입력 2015-06-03 20:41  

"행정입법 '수정·변경 요구' 위헌 논란
입법과정에 국회 동의절차는 없어
법대로 처리, 불필요한 정쟁 피해야"

홍완식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shong@konkuk.ac.kr >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온 국민이 뜻하지 않게 국회법 공부를 하게 됐고, 우리 정치는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진영을 나눠 다투는 데 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난달 29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는 ‘국회법 제98조의 2’(대통령령 등의 제출 등)를 수정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여야 의원 211명이 찬성했다. 개정된 내용은 국회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의 위법 여부에 대해 소관 중앙행정기관에 ‘통보’할 수 있다는 규정을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국회법의 개정안이 행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해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헌법은 제40조에 의해 법률의 입법권은 국회에 부여하고 있고, 제75조와 제95조에 의해 행정입법권은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다. 또 제107조 제2항에 의해 ‘위헌·위법인 명령·규칙 등의 심사권’은 대법원에 부여하고 있다. 행정입법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헌법 제53조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래도 안 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규범체계상 행정입법은 법률에 위배돼서는 안 되지만, 국회 스스로의 행정입법 통제권을 명시한 헌법 규정은 없다. 다만, 국회법 제98조의 2에서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을 제도화했으나, 이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 차원에서 행정입법 통제권을 제도화한 것이며 이번 국회법 개정을 통해 행정입법 통제권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론의 핵심은 국회의 행정입법 ‘수정·변경 요구권’의 기속력(강제력) 여부다. 즉, 개정된 국회법에 의해 국회가 행정부에 하는 행정입법 수정·변경 요구에 행정부는 반드시 따라야 하느냐는 문제인데 긍정론도 있고, 부정론도 있다. 이런 논란은 2000년 2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84명의 국회의원은 상임위원회가 대통령령 등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이 위헌임을 주장하는 국회의원 51명이 ‘시정요구’를 ‘통보’로 고친 수정안이 가결돼, 현행 행정입법 통보제도의 골격이 됐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통과는 15년 만에 재개된 패자부활전에서 ‘시정요구파’가 ‘통보파’를 누르고 역전에 성공한 것과 같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너는 어느 편이냐’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정쟁 없이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없다.

해법으로는 (1)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2)국회법의 재개?(3)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만이 검토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수의 국회의원이 개정안에 찬성했기 때문에, (1) (2)의 방안을 선택하기에는 청와대나 국회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다. (3)의 방안은 시간이 많이 걸리며 결과를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제(4)의 방안이 필요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대통령령 등에 대한 시정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여야의 합의가 필요하다. 여야가 합의해 시정요구를 하더라도, 대통령령 등에 대한 국회의 동의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강제력’이 거론되는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절차적인 강제력’은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을 요구하더라도, 원안을 수정할 수 없다는 행정부의 입장을 국회에 전달하고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공포하면 그만이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의 공포권자는 대통령·총리·장관이고, 이런 입법과정에 국회의 동의절차는 없다. 이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고, 국회와 청와대는 메르스 방역과 경제·대북·외교·통상 등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어떤가.

홍완식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shong@konkuk.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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