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축은행 분식회계, 회계법인 책임 없다"

입력 2015-06-03 21:08  

서울고법,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 손배소 기각

법원 "회계법인이 모든 부실대출 알기 어려워"
1심 뒤집은 이례적 판결
향후 기업 부실 관련 다른 소송에도 영향 '촉각'



[ 정소람 / 김인선 기자 ] 저축은행 후순위 채권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심 법원이 회계법인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기업의 분식회계에 대한 회계법인의 부실감사 책임이 광범위하게 인정돼온 가운데 나온 이례적인 판결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등법원 민사14부(부장판사 정종관)는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 김모씨 등 141명이 감사인인 대주회계법인, 금융감독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5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1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기각했다.

다만 공동피고인 사외이사 윤모씨에 대해서는 회사 감시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피해액의 50%를 1심의 공동피고인 다른 경영진과 함께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재판부는 강모씨 등 다른 삼화저축은행 투자자 19명이 낸 항소심에 대해서도 “회계법인이 피해액의 20%를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같은 재판부는 “감사인이 부담하는 주의 의무의 핵심은 ‘전?÷岵?의구심’을 가지고 감사 의무를 계획·수행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며 “감사 기준 준수 여부는 재무제표에 중대한 왜곡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적절한 감사 절차를 수행해 그 결과를 적절하게 기재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부실 대출이 서류상으로는 차명으로 실행돼 특정 대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려웠던 점 △감사인이 모든 대출 상환 출처를 밝힐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일부 대출 채권에 대해 추가적인 대손충당금 설정을 요구해 이를 반영한 점 등을 들어 회계법인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항소심에서 회계법인 측을 대리한 조용준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회계법인이 기업을 면밀히 조사할 권한이 없는데도 그동안 분식회계에 대해 과도하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접대를 받는 등 불법 행위가 없었고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는 등 노력했던 점을 인정받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투자자가 이 같은 판결에 항소할 경우 회계법인의 감사 책임 유무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다른 저축은행 투자 피해자가 진행 중인 소송이나 기업의 부실감사 관련 법적 분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이후 저축은행 연쇄 영업정지로 후순위채 투자자 수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을 계기로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부장판사 이인규)는 제일저축은행 후순위채에 투자해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에게 회계법인이 모두 25억9000여만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지난 2월 부산1·2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 600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같은 재판부는 회계법인 다인과 성도에 각각 43억9000여만원과 16억7000여만원의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외부 감사 과정에서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회계사들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정소람/김인선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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