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메르스보다 무서운 유언비어

입력 2015-06-04 20:53   수정 2015-06-05 05:41

윤희은 지식사회부 기자 soul@hankyung.com


[ 윤희은 기자 ] “당사자들만 불쌍하죠.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층에 사는지까지 다 알려져 여기저기서 오르내리니 얼마나 상처를 입었겠어요.”

4일 오전 서울 대치동 A아파트에서 만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대치동 A아파트 O동 OO호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부부와 B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의 맞은편 가구에 살고 있는 C초등학교 X학년 X반 학생은 학교 차원에서 하교시켰다”는 글이 빠르게 유포됐다. 일부 글에는 호수까지 기재됐고 C초등학교는 휴교했다. 취재진까지 몰리면서 지난 3일 밤에는 기자와 아파트 주민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글의 상당수는 유언비어였다. 부부 중 아내가 지병으로 들렀던 인근 종합병원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자택 격리조치가 내려졌을 뿐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아들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글 때문에 B고등학교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A아파트 관계자는 “맞은편 집에 사는 초등학생도 어린 だ結?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메르스와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이 도를 넘어섰다. 메르스 의심환자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인물의 신상이 유포돼 고통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일 인터넷에는 경기 화성시 보건소가 작성한 메르스 감염 의심자 개인정보가 담긴 공문서가 외부로 유출됐다. 여기에는 감염 의심자들의 실명과 주소, 직업까지 상세하게 기재돼 있었다. 화성시가 “최초 유포자는 물론 중간 유포자까지 엄벌할 것”이라고 밝히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이미 신상이 공개된 이들의 피해를 막기에는 늦었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조심하는 태도는 마땅히 필요하다. 그러나 공포에 쫓겨 개인 신상에 대한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SNS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개인 정보는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윤희은 지식사회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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