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세계의 현충일

입력 2015-06-05 20:3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플랜더스 들판에 양귀비꽃 날리네/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는/ 십자가 줄줄이 서 있는 사이로/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땅에선 포성 때문에 그 노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죽은 자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끼고 불타는 석양을 보았지/ 사랑도 하고 사랑받기도 했건만/ 지금 우리는 플랜더스 들판에 누워 있네.’

1차 세계대전 때 캐나다 군의관 존 매크래가 전장에서 쓴 시 ‘플랜더스 들판에서’의 일부다. 그는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의 플랜더스(플랑드르)에서 전우들의 장례를 치른 뒤 이 시를 썼다. 안타깝게도 종전 몇 달 전 사망한 그를 기려 캐나다에서는 매년 현충일 이 시를 낭송한다. 사람들은 이날 양귀비 조화를 달고 다닌다.

영연방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현충일은 11월11일이다. 1차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11일을 회상하며 희생자를 추모한다. 명칭은 영령기념일 또는 종전기념일을 뜻하는 리멤버런스 데이(Rememberance Day). 영국에서는 양귀비 화환을 올려놓고 2분간 묵념한다. 2분 묵념은 1, 2차대전을 아우르는 의미다. 호주와 남아공, 폴란드에서도 그렇다.

패전국인 독일에는 휴전 또는 영령기념舅?따로 없다. 11월11일은 전통적인 독일 사육제의 시작일 뿐이다. 일본은 2차대전이 끝난 8월15일을 ‘전몰자 추도와 평화 기원의 날’로 삼고 있다.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5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남북전쟁 후인 1868년 5월30일 북군 출신 존 로건 장군이 장병들 무덤에 꽃을 장식하라는 포고령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1차대전 후부터는 군사작전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을 기린다. 요즘은 5월 마지막 주 연휴라는 점에서 여름휴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현충일이 6월6일인 것은 의외다. 6·25와 관련도 없다. 절기상 망종(芒種)인 이때 조상이나 호국영령에 제사지내던 풍습을 참고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이때를 길일로 여겼다. 망종은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지만 ‘씨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의미도 있다.

묵념은 1분만 한다. 추모시도 낭송하는데 ‘플랜더스 들판에서’처럼 정해진 건 없다. 60회째인 올해는 배우 현빈이 보훈문예공모 수상작 ‘옥토’를 낭송한다. 뜻밖에 호국영웅 유족 5명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한다는 게 놀랍다. 그동안에도 4부 요인과 정당 대표, 학생 등 1만여명씩이나 모였는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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