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마다하고 한국으로 눈을 돌린 세계 청년들이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 스타트업에 승부를 걸기 위해서다. 독일에서 온 경영자부터 러시아 국적 개발자까지 각국 인재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볼까. [한경닷컴]이 세계 청년들과 비정상회담을 열고 'K-스타트업'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편집자주]
[ 최유리 기자 ] 한국을 기점으로 영역을 넓히는 광고업체와 달리 제이슨 최 디메이저 공동대표(사진)에게 한국은 해외 진출을 위한 목적지였다. 미국에서 광고일을 시작한 최 대표에게 새로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글로벌한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는 제일기획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 그가 제일기획을 나와 디메이저를 창업했을 때 "미쳤다"는 게 주위 평가였다. 국내 광고업계 1위를 마다하고 스타트업에 모험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인의 건물 옥탑방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접 벽지를 붙이며 마케팅 기획서를 만든 게 디메이저의 시작이었다.
안정성을 포기한 대신 디메이저는 속도와 유연성을 얻었다. 대기업의 큰 덩치와 위계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없애면서다. 최근에는 옐로모바일 사단에 합류하면서 더 큰 무대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 개성있는 디지털 콘텐츠로 승부…다양한 직원 구성이 경쟁력
디메이저는 광고가 아닌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 회사다. 제품을 사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보다 소비자들과 브랜드에 대해 소통하는 방식이다. 광고·이벤트 기획부터 웹 사이트 및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제작까지 다양한 경로를 이용한다. 동영상, 사진, 음악 등 소통하는 형식도 여럿이다.
"과거에는 광고가 실리는 매체 파워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콘텐츠 시대입니다. 콘텐츠가 재미있으면 어떤 경로를 통하든 파급력을 낼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힘을 입증한 대표적인 예는 메가박스 솔로관 캠페인이었다. 2013년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솔로대첩이 이슈화되면서 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영화관에 솔로들을 모아 소개팅을 주선하는 이색 마케팅이었다.
"메가박스는 경쟁사보다 규모도 작고 마케팅 비용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슈 메이킹이 필요했죠. 솔로들에게 영화는 가장 만만한 오락거리지만 크리스마스 때 혼자 영화관을 찾는 것은 꺼립니다. 그래서 솔로관을 만들었죠. 옆자리에 임의로 이성을 배치해 커플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결과 166명 모집에 3만명이 지원했어요. TV뉴스에도 나오는 등 화제가 많이 됐죠."
이후 디메이저는 삼성, 현대자동차, 구글 등 굵직한 30여개 고객사를 확보하게 됐다. 설립 3년 만에 5배 가까운 매출 성장도 기록했다.
아이디어는 다양한 배경의 직원들에게서 나온다. 개성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DJ, 비보이, 셰프 등 이색적인 이력의 인력을 뽑았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외국인 직원 비율도 20%에 이른다.
"디메이저에는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마구 얘기할 수 있는 자리죠. 보고하는 절차도 없앴습니다. 회사 대표는 결제자가 아니라 멘토라고 생각하거든요. 창의적이고 유연한 생각이 나오려면 일하는 문화도 달라야죠."
◆ IT 중심 스타트업 성공 사례 다양해져야…YDM 합류로 시너지 기대
개성있는 직원들을 경쟁력으로 꼽았지만 인재를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타트업보다는 대기업을 선호하는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뉴욕, 오스틴 등 여러 지역에 스타트업들이 모여있습니다. 지역 식당이나 바에 가면 미팅 중인 스타트업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고요. 스타트업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길을 만드는 미국에 비해 한국은 정해진 길을 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소위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고 집을 사는 길이죠."
인재를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성공 케이스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정보기술(IT) 분야에 편중된 현 ?구조에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는 것.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경쟁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을 따라 투자자가 몰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옐로디지터마케팅그룹(YDM)에 합류한 것도 스타트업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옐로모바일의 자회사인 YDM은 국내외 디지털 마케팅 분야의 19개 회사가 모인 연합체다. 올해 1분기 옐로모바일 전체 매출에서 35%를 차지한 성장 동력이다.
"일부 글로벌 미디어 그룹과 국내 대기업에서 인수 의사를 보였지만 디메이저는 YDM을 선택했습니다. 보통 기업은 인수를 통해 부족한 것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피인수 회사의 색은 사라지죠. 반면 YDM은 하던 방식대로 일하면서 비전을 지지받을 수 있다는 게 맘에 들었습니다."
디메이저는 YDM에 소속된 계열사들과 협업해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계열사의 콘텐츠를 고객사와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역할 확대도 구상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태평양 쪽에서 한국을 찾는 광고주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적인 콘텐츠와 마케팅 인프라를 찾기 위해서죠. 큰 글로벌 프로젝트 안에서 YDM 계열사들이 건강하게 경쟁하거나 협업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3년동안 내실을 다졌다면 이제는 성장의 티핑포인트(전환점)에 왔다고 봅니다."
최유리 한경닷컴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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