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연설 데니스 홍 美UCLA 기계공학과 교수
머리 땋는 여자애 보고 세 발로 걷는 로봇 개발
美 첫 휴머노이드 '찰리', 사슴 이중관절서 '힌트'
당장 돈 되는 연구보다 기초과학·원천기술 투자
많이 해야 성과물 나와
[ 이호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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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기계항공학과 교수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창의력이 번뜩이는 과학자다.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이유다. 2009년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 ‘브라이언’을 개발했다. 미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찰리’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미국 과학잡지 포퓰러사이언스가 선정한 ‘젊은 천재 과학자 10인’에 꼽히기도 했다.
홍 교수는 10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개최하는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기초 강해야 융합시대 승자 된다’는 행사 주제에 맞춰 로봇이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 모습과 국내 로봇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가 당장 돈 되는 연구만 요구할 게 아니라 기초과학, 원천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앞으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로봇공학 수준을 어떻게 보나.
“한국 로봇 연구자 중에서도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이가 많다(인터뷰 이후 오준호 KAIST 교수팀이 제작한 휴머노이드 휴보가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재난로봇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로봇이 다 모인다는 한 국내 전시회에 가본 적이 있는데 우수한 로봇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른 곳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로봇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들리는데.
“정부의 연구비 지원 시스템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당장 돈 되는 연구만을 요구한다. 당연히 연구자들이 실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없어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압박이 심하면 해외에서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고 대충 짜맞추기 식으로 연구 보고서를 내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새로운 게 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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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과학연구 환경의 특징은.
“선진국이라도 미국과 일본은 다르다. 혼다 ‘아시모’ 덕분이긴 하지만 로봇 강국으로 일본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휴머노이드 분야에 집중 투자해왔다. 이와 달리 미국은 원래 휴머노이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지원한 분야는 기초과학 원천기술 쪽이다. 그러던 중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미국에서도 재난 구호용 휴머노이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딱 1년 동안 일본을 능가하는 휴머노이드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게 기초과학의 힘이다.”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부터 다리가 세 개인 로봇, 지뢰 제거용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을 개발했다.
“유명한 건축가인 루이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했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재난구호용 로봇은 지진, 화재부터 건물 붕괴, 선박 침몰, 전염병 유행, 방사능 유출, 총기·폭탄 테러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던 임무를 대신 수행해야 한다. 그만큼 복잡한 기능이 필요하다. 사람을 닮은 로봇(휴머노이드)으로 개발하는 이유다. 사람이 쓰던 각종 장비 등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지 관심이 많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적절히 연결하는 힘이다. 미 해군이 걷는 로봇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한 적이 있다.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각종 아이디어를 메모해둔 노트를 폈다. 10년 전쯤 학생시절 공원에서 딸의 머리를 땋아주는 엄마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세 갈래로 매듭을 묶는 원리를 연필로 스케치해뒀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 다리 세 개로 움직이는 ‘스트라이더’가 탄생했다.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찰리’의 이중관절도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사슴 화석의 무릎 구조를 본떠 만든 것이다.”
▷일반인이 그런 연결고리를 찾기 쉽지 않다.
“호기심이 원천이다. 머리를 꼬아 땋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그래서 원리를 파악해 그려둔 것이다. 그렇게 모아둔 아이디어 노트만 다섯 권이 있다. 이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뭐든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힘이 곧 창의력이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호기심과 지식, 경험, 소통이다.”
▷사람을 뛰어넘는 로봇이 출현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
“최근 기사만 보면 당장이라도 인공지능 로봇이 나올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직은 멀고 먼 얘기다. 100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아직 사람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른다. 로봇공학자로서 인공지능은 감정이나 자아 정체성을 갖는 게 아니라 외부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추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인공지능도 결국 소프트웨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로봇 하면 하드웨어만 생각한다. 사실 소프트웨어 없이 로봇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소프트웨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코딩 언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리를 익히거나 추리소설을 읽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
▷한국 로봇산업의 미래는.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한국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잘 활용해야 한다. 우수한 인적 자원도 강점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로봇산업의 미래는 밝다. 최근 한국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다. 그때마다 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자주 한다. 로봇에 미쳐 있는 어린 꿈나무를 많이 만나게 된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이렇게 열정적인 젊은 친구들을 보지 못했다.”
데니스 홍 약력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생
●서울고 졸업 ●고려대 기계공학과 중퇴
●미국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 졸업
●퍼듀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업(공학 박사)
●버지니아대 기계공학과 교수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 (UCLA) 기계항공학과 교수 (로멜라로봇연구소장)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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