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법의 공법화를 우려하는 이유

입력 2015-06-09 20:33  

국가주의 우선시하는 요즘 세태
자유·번영 부르는 시장경제 질식
사적영역의 권위를 되살릴 때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흥미로운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사법(私法)의 공법화(公法化)’가 그것이다. 이 어려운 개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는 저성장, 고실업, 빈곤 등 심각한 경제문제의 진단과 해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형법은 ‘공법’이고 공법은 ‘자유와 재산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사법의 공법화는 사적 영역에 대한 형벌 적용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이해는 단순 논리요, 오해의 소지도 크다.

원래 이 개념은 19세기 독일에서 생겨나 영국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확산된 ‘사회정책’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분배와 관련된 그 정책의 결과는 복지입법의 증가였다. 유명한 법 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등 독일 학자들은 그런 입법의 증가로 사적 영역이 축소되고 있음을 간파했다. 공법이 사법을 대체하는 것은 정부의 분배적 목표 추구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주목할 것은 왜 그런 목표 추구가 사법의 대체를 초래하는가의 문제다. 사·공법의 성격 차이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 임마누엘 칸트의 ‘정의의 보편적 규칙’으로 구성돼 있는 사법은 집단적 목적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사법은 강제, 사기, 약속 불이행과 같은 불의(不義)를 당연히 금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법원, 의회, 행정부)의 조직을 위한 규칙으로서 공법은 조직의 목적이 핵심 내용이다. 공법은 공무원들에게 그 목적에 합당하게 지시·명령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사법의 공법화는 공법적 성격을 가진, 즉 집단목적을 위한 입법을 통해서 그 목적과는 독립적인 사법을 대체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최소·생활임금제, 사회적 경제 등 그런 입법은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에 따라 다양하다. 실업, 소득, 건강,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야심에서 만든 복지입법도 사법을 공법으로 대체하는 입법이다.

사법을 기초로 하는 것이 집단목표를 추구하는 조직질서와 대비되는 ‘자생적 질서’라는 이유에서 공법화는 폐쇄된 사회에 의한 열린사회의 교체라는 하이에크의 해석이 돋보인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서는 집단적 목표가 없고 개개인이 제각각 추구하는 개별목표만 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사법의 공법화에는 공법 우위의 국가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공법은 법이 아니다. 적어도 사법보다 열등하다. 사법은 정의 및 대등관계와 연결돼 있는 데 반해 공법은 권력 및 예속관계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의를 사수하기 위한 게 형법이라면 이를 법이라고 볼 수 없는 공법으로 분류한 우리의 지성사가 야속할 따름이다. 정의의 규칙으로 구성된 게 사법이 아닌가.

사법의 공법화를 부추긴 요인도 흥미롭다. 사회는 계획해서 만들어야 합리적이고 법이란 국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믿음이 공법화에 큰 몫을 했다. 법 체계의 자생적 성장에 관해 관심도 경험도 없는 일부 공법학자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사법과 공법을 구분할 줄 모르는 케인스주의를 포함하는 주류경제학도 공법화의 공범자요, 흥미롭게도 민주주의를 분배평등과 복지실현을 위한 혁명의 도구로 여기는 사회주의야말로 그 주범이 아닐 수 없다.

사법의 공법화는 치명적 결과를 부른다. 사법의 주체인 시민들과 이들의 재산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요 행정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렇게 해서 상실되는 건 개인의 존엄성이요 기업가 정신이다. 그런 공법화는 법치의 파괴를 불러와 법의 존엄성과 권위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면 법을 경시하고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된다. 대들보를 없애면 건물이 무너져 내리듯이 공법화는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를 파괴해 사회적 평화와 안정, 번영이 흔들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공법화 때문에 사법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자유와 번영을 안겨주는 시장경제도 질식되고 있다. 그 결과가 경제의 불안한 장기불황이다. 지금이 공법화를 중단하고 사법의 권위를 회복시킬 절호의 기회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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