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어학계 일원' 인정받아
1966년 군 복무중 한국과 인연…'한국어 변천사' 영어권 첫 소개
[ 이미아 기자 ] “50년 전 한국어는 해외에선 존재감이 미미해 배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K팝과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로 한국어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9일 서울 동숭동 일석기념관에서 일석국어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램지 미국 메릴랜드대 동아시아언어학 교수(74·사진)는 시상식 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메릴랜드대에서 한국어를 공부 중인 학생들만 해도 국적이 매우 다양하며, 미국 내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며 “한류 스타들의 팬이 된 것을 계기로 한국어 공부까지 하게 된 이들이 상당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석국어학상은 일석학술재단(이사장 강신항)이 2003년부터 매년 한국어 연구에 우수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일석학술재단은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어 문법체계 연구 및 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친 일석(一石) 이 洲?선생의 유지로 2002년 10월 설립됐다. 50년 가까이 한국어를 연구한 램지 교수는 2011년 이기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어의 변천사를 영어권 국가에 처음으로 소개한 ‘한국어의 역사(A History of the Korean Language)’를 펴내고, 미국 언어학계에 한국어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램지 교수는 “한글이란 고유의 표음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15~16세기 중세 한국어 자료가 그대로 간직됐다”며 “이 자료 중엔 당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음운체계에 대해서도 기록된 게 많은데, 이런 자료가 남아 있는 건 세계 언어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했다. 아울러 “언어학자로서 한국어 연구는 내 삶의 큰 즐거움이고 그것을 즐겼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고, 한국 언어학계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램지 교수는 1966년 학사장교(ROTC)로 한국에 파견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언어에 호기심이 생겨 ROTC 2년 복무를 마친 뒤 연세어학당에 다녔다”며 “그렇게 시작한 한국어 공부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했다. 당시 램지 교수의 개인 교사이자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처음 가르쳐준 한국인 여성은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됐다.
램지 교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오랫동안 들어온 입장에서 현재의 한국어 억양은 1960년대보다 훨씬 부드럽고 차분해졌다”며 “젊은 시절 처음 거리에서 한국어를 들었을 땐 매우 날카롭고, 뭔가 급한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전반적인 음성 톤이 바뀌었다는 건 한국인의 삶의 질이 과거 팍팍하고 어려웠던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음을 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동아시아 3개국어에 능통한 램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학습에 매달리는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매번 놀란다”며 “특히 ‘기러기 아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만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선 자녀에게 특정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가족이 떨어져 사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며 “현지인처럼 말하는 것만이 언어의 전부는 아니다”고 했다.
램지 교수는 성인이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최소 1~2년 정도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정규 학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하나의 문화를 배운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언어와 관련된 역사 및 문화를 반드시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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