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선 불필요한 독점규제…모든 시장 참여자가 가격에 영향
담합 오래 못가고 결국 무너져…독점·과점시장 구분도 의미 없어
정부가 특정기업에 주는 특혜가 오히려 시장경제 망치는 독점
카를 마르크스 이래 경제사상사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 중 하나는 시장의 자유경쟁을 유지하는 데에 ‘사유재산’ ‘계약자유’ ‘개인책임’ 등과 관련된 사법(私法)만으로 충분하냐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사법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별도의 공적인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정부가 규제하지 않고서는 단일 또는 소수 대기업의 ‘독점행위’ 때문에 시장의 경쟁적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독점행위란 공급을 줄이고, 품질이 좋지 않아도 가격을 높게 매긴다는 것을 뜻한다. 자유시장은 이런 악덕기업의 독점행위를 스스로 통제해 소비대중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믿은 것이다.
이런 믿음에서 오늘날 세계 각국이 도입하고 있는 게 ‘독점규제법’이다. 이 법의 바탕에는 독점행위를 야기하는 기업규모, 시장점유율, 상품의 이질성, 담합·결합 등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래서 큰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가격경찰’이 덮치고, 담합을 막기 위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같은 밀고제도도 둔다. 스탠더드오일,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덩치 큰 기업들에는 몸집을 쪼개겠다고 위협한다.
독점행위를 하면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점유율과 기업의 규모가 자동적으로 독점행위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점유율이 높아도 원가절감, 품질개선, 시장확대 노력을 통해 매우 경쟁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은 독점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기술, 수요, 위험자본 등이 기업규모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며,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기업의 성장을 좌우한다. 단지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독점행위를 하는 게 아니다. 기업은 규모나 시장점유율과는 무관하게 글로벌 경쟁압력에 노출돼 있다. 상품 공급을 축소하고 가격을 인상해 돈벌이만 하려는 기업은 혁신경쟁에서 뒤처져 시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글로벌 경쟁 때문에 오늘날 기업의 시장지배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이테크산업 부문은 로테크산업과 달리 신기술이 지속해서 등장하며 경쟁구도도 수시로 뒤바뀐다.
흥미로운 건 담합이다. 그러나 담합도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해결된다. 가격담합은 내·외적 이유로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동업자의 배반 또는 생산량 할당과 관련된 갈등으로 오래가 ?못한다. 외부적으로는 경쟁력이 있는 신규 생산자의 시장진입 때문에 늘 불안정하다. 셰일가스 개발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이 무너진 게 좋은 사례다. 그러나 파스칼 살랭 프랑스 파리대 교수가 지적하듯이 이용자 수가 많을수록 쓸모가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를 지닌 상품공급의 담합처럼 시장은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유익한 안정적 담합을 가능하게 한다. 통신, 자동차플랫폼 등과 같은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 상품에서 이질성은 소비자, 생산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게 ‘이질성의 제한’ 또는 ‘표준화를 위한 담합’이다. 담합을 통해 상품이 표준화하거나 이질성이 줄어들면 소비선택이 간편해진다. 그런 담합은 독점행위 없이 소비자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킨다. 자동차업체들은 자동차 표준화로 광고선전 비용을 절감하고, 차체나 디자인에서 경쟁·혁신능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
‘담합은 생산량을 줄이기 때문에 사악하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머레이 로스바드의 인식도 흥미롭다. ‘커피담합’은 커피콩 생산을 줄이지만 그로 인해 남아돌게 된 노동자본은 긴급히 필요한 재화(고무)와 서비스(정글가이드)의 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담합은 전체 산출량을 줄인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로스바드의 발전적 인식이다.
이쯤에서 봐도 독점규제법은 불필요하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 옹호자들이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가격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을 뜻하는 잘못된 독점개념 때문이다. 자유시장에서는 어떤 판매자든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殮?때문에 독점·경쟁가격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오직 ‘자유시장가격’만 있을 뿐이다. 완전경쟁시장, 과점시장, 독점시장의 구분도 실익이 없다. 자유, 경쟁,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애덤 스미스의 ‘자연적 자유의 시스템’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독점이란 그런 시스템을 위반하는 정부의 기업특혜 특권이다. 독점을 줄이는 방법은 정부의 그런 특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정부 개입 없이도 효과적으로 기업들의 경제력을 길들이는 시장원리, 즉 그들의 행동을 조정·통제하는 시장과정에 대한 인식부족 탓이다. 시장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들의 행위를 조정하는 힘이 있다. 잘못된 행위를 수정하거나 가차없이 처벌·제거하는 힘도 있다. 시장의 조정·통제력이야말로 하이에크의 유명한 ‘경쟁의 발견절차’다.
자유시장은 그런 자생적인 힘이 있어 독점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따라서 정부는 독점과 관련해 따로 해야 할 일이 없으며 당연히 독점규제법도 불필요하다. 인위적인 독점규제는 특히 지식의 문제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독점규제법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는 독점력을 제거하고 최적 기업규모·시장구조, 적정 분배를 계획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계획과 실현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각처에 분산해 있기 때문에 정부는 그런 지식을 전부 수집해 이용할 수 없다. 그런 계획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독점규제법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지적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 자만은 치명적이다. 독점규제는 기업과 개인을 국가정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적 자치와 경제적 자유가 유린당한다. 그런 규제법은 법치의 치명적인 위반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시장은 독점규제법이 없어도 독점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독점규제법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고 번영을 해칠 뿐이다.
오이켄 vs 미제스, 독점규제 논쟁 승자는?
시장의 독점문제 해결능력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철학적 논쟁은 발터 오이켄(1891~1950)과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 간의 논쟁이다.
오이켄은 전후 독일 경제질서의 기초를 확립한 프라이부르크학파의 창시자다. 그는 ‘기업의 독점권력’ 때문에 국가가 규제하지 않고서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를 이끈 자유주의 거장 미제스는 자유시장이야말로 독점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점의 근원은 시장이 아니라 인허가제도, 관세 등의 규제를 통해 독점을 창출하는 국가 자체라는 것이다. 오이켄도 독점의 근원이 국가라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사적 독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시장은 사적 독점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독점규제 정책에 대한 미국 경제학자 도미니크 아르멘타노의 역사연구가 분명한 해답을 준다. 그에 따르면 스탠더드오일, 포드, US스틸 등 거대기업들은 회사가 커짐에 따라 가격을 내리고 공급은 늘렸다. 거대기업들이 소비자를 괴롭혔다는 것도 틀렸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의 혁신활동 덕에 소비자는 질 좋은 상품을 싼값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점규제 정책은 약한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일 뿐 독점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다는 것도 아르멘타노의 탁월한 역사해석이다. 그의 연구는 자유시장은 독점규제 없이도 거대기업의 독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미제스의 인식이 옳았다는 걸 입증한다. 그럼에도 학계와 정치권은 이런 생각에 냉소적이다. 경제학을 ‘대기업을 길들이는 과학’이라고까지 주장한 프랑스 경제학자 장 티롤이 201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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