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계 1등 기업 포스코의 '촌극'

입력 2015-06-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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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산업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매년 6월9일은 ‘철의 날’이다. 1973년 6월9일 포항제철소에서 처음 쇳물이 나온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했다. 올해 철의 날은 포스코에 더 특별했다. 세계 철강전문 분석기관 월드스틸다이내믹스(WSD)는 이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6년 연속 포스코를 선정했다.

같은 날 오후 철의 날 기념식장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축하 인사가 아닌 질문 세례를 받았다. “미얀마 가스전은 대체 어떻게 돼 가냐”는 것이었다.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지난달 26일 모기업 포스코가 검토해온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자신의 해임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10일에는 자진 사퇴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사외이사들에게 보냈다. 포스코 수뇌부는 전 사장에 대한 해임 절차를 진행한 지 하루 만인 11일 오후 180도 입장을 바꾼 해명 자료를 내놨다. ‘해임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항명 사태’로 언론에 잘못 보도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홍보담당 임원을 보직 해임했다.

전 사장 해임 절차에 관한 설명도 달랐? 당초 지난달 14일 모든 계열사 대표가 쇄신을 각오하며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를 수리하면 된다고 했지만 11일에는 “계열사 사장 해임은 해당 회사 이사회의 50%, 주주총회 67%의 찬성을 거쳐야 한다”며 권 회장에게 해임 권한이 없음을 시인했다.

이번 사태는 두 명의 포스코 임원 경질과 전 사장 자진 사퇴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지만 권 회장에게 더 큰 숙제를 남겼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공언해온 포스코의 리더십에는 금이 갔다. 재계에선 “포스코 특유의 순혈주의와 불통의 문화가 만든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포스코 직원 사이에선 “경영진의 이번 조치에 크게 실망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돈다.

포스코를 두고 외압에 휘둘리는 기업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는 포스코가 정치 권력에 휘둘리는 게 외풍 때문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해외 투자법인을 포함한 포스코 계열사는 181개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국내를 앞질렀다. 명실공히 세계 1등 철강사의 외형을 갖췄다면 그에 걸맞은 내부 체제 정비가 시급하다.

김보라 산업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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