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전수명, 전문가 판단 존중해야

입력 2015-06-15 20:34  

"40년 가동끝 해체될 고리1호기
60년 수명 보장받은 미국과 차이
원전안전성, 정치에 휘둘려선 안돼"

이익환 < 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고리1호기는 30년 설계수명이 끝난 2007년에 한 차례 10년간 계속운전 승인을 받아 운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소속 에너지위원회는 고리1호기 가동 영구중단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권고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정지한다. 한수원은 산업부 산하 공기업이기 때문에 고리1호기 가동 연장승인을 신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970년 초 원전(原電)기술이 없던 한국은 미국 원전 공급자인 웨스팅하우스와 턴키(일괄도급계약) 방식으로 고리1호기를 건설해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달러도 채 안 되던 경제 상황에서 2억달러에 가까운 차관을 들여와 세운 고리1호기는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일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런 고리1호기는 과연 기술적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까. 고리1호기와 똑같은 원전이 미국에서는 아직 운전 중인데 왜 고리1호기는 운전을 중단해야만 할까. 미국에선 고리1호기와 설계가 같은 60만㎾급 원전 다섯 기가 수명연장 승인을 받아 운전 중이다. 미국에서 이 원전의 설계수명은 40년이며 20년의 수명연장으로 총 60년간 운전할 수 있게 됐다. 당초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이 30년으로 승인됐는데 이는 큰 잘못이었다. 발전소 감가상각을 앞당겨 외국에서 빌린 돈을 조기에 상환한다는 관점에서 설계수명이 결정된 것이지 기술적인 설계수명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같은 설계의 원전 수명이 미국은 40년이고 한국은 30년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술적 수명이 남았는데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을 조장해 원전을 폐쇄한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적 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최근 스웨덴 원전의 정책적 폐쇄가 환경, 건강 및 국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스웨덴 정치권은 1999년 기술적 운전능력이 3분의 1가량 남아 있던 60만㎾급 바르세벡 원전 1, 2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원전으로부터 전기를 끌어쓰던 독일, 덴마크 등 인근 지역국가에서 대체 화력발전소를 돌리면서 광범위한 공기오염을 초래했고, 이에 따른 의료비용과 발전소 증설로 스웨덴은 재정부담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리1호기의 안전성은 전문가집단인 안전규제기관이 분석, 평가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생략된 이유가 의문이다. 기술적으로 운전 잠재력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기술자의 몫이다. 산업부가 원전 중단을 바로 결정할 권한을 가졌다고는 볼 수는 없다. 원자력진흥과 관련한 최고 의결기관인 원자력진흥위원회와의 상호역할도 설명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국익에 관한 것이다. 60만㎾급 원전을 폐쇄하면 해당 용량의 전력시설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원전을 새로 건설하면 30억달러 이상이 소요되며 건설 기간 또한 오래 걸린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문제는 물론, 전깃값도 오를 수밖에 없어 그만큼 국민 부담이 커진다.

스웨덴 정부는 제1당 사민당이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사민당은 원전을 지지하지만 녹색당은 원전 폐쇄를 주장한다. 녹색당이 환경기후장관을 맡고 있어 원전 폐쇄정책이 연립정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웨덴 정치권은 실익을 따져 원전 폐쇄를 미루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은 스웨덴에 비해 정치적 여건이 훨씬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역주민의 표만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정해진 절차와 과정을 기술적으로 이행하지도 않고 원전정책을 졸속으로 결정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익환 < 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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