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욱의 마이스터 이야기] 발트 3개국 자전거 투어 차백성씨

입력 2015-06-17 16:35   수정 2015-06-17 23:34

▲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씨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복 기념과 통일 기원을 위해 발트 3국에서 자전거 투어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주)새빛에듀넷
<p>1989년 8윌 23일 저녁 7시, 발트 3국 국민들이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620km나 되는 거대한 '인간 띠'를 이루었다. 그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자유와 독립을 외쳤다. 다음 해인 1990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세 나라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길었던 '인간 띠의 행렬<발트의 길>'에 전 세계는 주목했고, 소련은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p>

<p>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자전거 여행가인 차백성씨(65)씨가 광복을 축하하고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발트 3개국 자전거투어 행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p>

<p>(주)새빛에듀넷 관계자는 17일 "광복 70주년 기념과 남북통일 기원을 위해 차씨가 45일 동안 발트 3개국 자전거 순회 여행을 2聆煥壙?시작했다"고 밝혔다.</p>

<p>발트 3국은 발틱해 남동쪽의 해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세 나라를 총칭하는 말이다.</p>

<p>차씨는 15년 째 자전거를 타고, 10만km 이상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는 자전거 여행가이다. 이번에도 광복 70주년을 맞아 인간 띠를 이뤄 독립을 쟁취했던 나라가 있는 발칸반도로 여행지를 선택했다.</p>

<p>두 바퀴에 의지해 발트 3국의 독립 시발점이 되었던 620여km 인간 띠의 시작점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의 대성당 광장에서 첫 페달을 밟았다. 광복이 된 1945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45일 일정으로 인간 띠를 형성했던 역사적 현장을 자전거로 순회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차씨는 향후에도 자전거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충실히 할 계획이다.</p>

<p>차씨는 독일월드컵대회 때 한국국가대표팀의 승리 기원을 위해 터키에서 알프스를 넘어 우리나라 팀 경기가 있었던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까지 2006㎞를 달려 화제가 된 바 있다.</p>

<p>차씨는 "광복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좌표가 중요하며, 남과 북이 무력으로 감정적으로 충돌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며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차원에서 자전거 투어를 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p>

<p>차씨는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해 상무이사 등을 지내다 49세 때인 2000년 12월 퇴직한 뒤 자전거 여행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자전거 여행기인 '유럽로드','아메리카로드','재팬로드'등의 저서를 출간했다.</p>

<p> <발트의 길></p>

<p>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민 200여만 명은 세계만방에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기 위해 620km 인간 띠를 만든 '발트의 길' 시위를 벌였다. 1939년 8월 23일,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소련에 넘겨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으로 발트 3국이 소련에 편입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열린 시위였다.</p>

<p>발트해 연안 3개국 국민 700여만 명 중 약 200만 명이나 참석한 사상 최대의 인간 띠로 만든 독립 염원 시위였다.</p>

<p>이 띠는 세 나라의 수도인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이르는 620㎞를 인간 띠로 연결한 행사다. 3국의 시민들이 오후 7시를 기해 기나긴 길 위에 동시에 늘어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15분간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 3국 국민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열망이 간절한 행사였다. 이 행사는 '발트의 길(Baltic Way)'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올랐다.</p>

<p>발트 3국은 이민족과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1918년 독립해 공화국이 되었으며, 1934년에는 발트 3국 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1940년에 다시 소련에 합병되어 1941~1944년까지 독일군의 점령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소련의 통치하에서 민족공화국으로서의 명맥만 유지했다.</p>

<p>이후 소련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개혁과 개방의 열망이 활활 타올랐지만, 조그마한 이 세 나라의 독립을 향한 열망에 관심을 가지는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거대한 인간 띠를 형성한 채 목이 터져라 독립을 외쳤다. 마침내 세 나라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쟁취해냈다. 인간 띠를 통한 자유의 열망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고 발트 3국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기적의 자유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p>

<p>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 소장 yeounook@naver.com</p>



- 한경닷컴 정책뉴스팀 기자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