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미 기자 ] 한국 경제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듣다 보면 대체로 하나로 귀결된다. 저출산 문제다. 내수가 비실대고 복지 비용이 급증하는 것,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선진국 진입이 불투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들은 ‘저출산 깔때기 현상’을 체감한다. 기사 내용은 다른데 결말은 ‘저출산을 해결합시다’로 똑같아진다.
경제학자들에겐 출산도 하나의 경제적 선택이다. 이들의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자녀의 가치가 높을수록 출산을 선택하기 쉬워진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존재였지만 이젠 달라졌다. 오늘날의 자녀 가치를 측정해볼 수 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8일 ‘자녀 가치 국제비교’ 보고서에서 비슷한 시도를 했다. 개인들이 자녀에게 느끼는 ‘자녀 가치’를 점수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부모에게 제공하는 물질적 이익, 자녀를 가짐으로써 얻는 사회적·심리적 이익이 모두 포함된 ?
연구원은 2012년 각국에서 실시한 국제사회조사 프로그램(ISSP) 결과를 활용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국과 한국의 자녀 가치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자료다.
자녀 가치의 긍정적인 부분부터 보자.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가’에 대해 한국인은 5점 만점에 4.26점을 줬다. 점수가 높을수록 ‘그렇게 느낀다’는 의미다. 비교 대상 9개국 가운데 한국의 점수는 영국(4.16점) 다음으로 낮아 하위권에 속했다. ‘성인 자녀가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한국은 비교적 부정적이었다. 이 항목에서 한국인이 매긴 점수는 3.54점. 9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낮다. 한국인은 자신이 늙었을 때 자녀가 보살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긴 국가는 미국(4.00점)이었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녀 가치는 따로 있었다. ‘자녀로 인해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가’라는 항목에서는 한국의 점수가 3.17점으로 스웨덴(3.29점) 다음으로 높았다. 아이를 지위 상승의 기회로 보는 시각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얘기다. 내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엔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한국사회의 병폐로 지적돼온 사교육 열풍, 대학 간판 위주의 생각이 자녀 가치에 반영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한국이 크게 두드러졌다. ‘자녀가 부모의 자유를 제한하는가’ 항목에서 한국의 점수는 3.30점으로 9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아이가 있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자녀가 부 弔?경제활동 기회를 제한하는가’라는 항목에서도 한국은 3.25점으로 독일(3.29점)에 이어 높았다. 아이가 있으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태도다. ‘자녀는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인가’라는 항목에서도 한국(3.09점)은 세 번째로 높은 공감대를 나타냈다.
김미숙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인이 인식하는 자녀는 부모의 자유와 경제활동을 제한하고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는 존재”라며 “그러면서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등 특이한 양면적 인식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6가지 항목을 종합했을 때 한국의 자녀 가치는 3.17점으로 9개국 가운데 7위에 그쳤다. 미국(3.52점) 스웨덴(3.51점) 중국(3.40점) 등에서 자녀 가치가 높았다. 보고서는 자녀 가치가 높을수록 출산율도 높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느끼는 자녀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결국 이 기사도 이렇게 당연한 결말로 끝맺게 된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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