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원 기자 ] “합병 결의가 위법이라는 말씀은 하나도 없으시네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지난 19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금지 등 가처분’ 심문에서 삼성물산 측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처분을 신청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측 변호인이 앞서 한 변론에 대한 촌평이었다. 삼성물산 측 변호인은 “엘리엇 측이 언론에서는 관심이 있을지 몰라도 법적인 사안과는 무관한 주장만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엘리엇 측 변호인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짓는 데 이날 변론의 대부분을 썼다.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 4.1%를 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에 넘기기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엘리엇 측 변호인은 “여러 매체에서 그런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금산분리정책에 따라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를 모두 팔아야 할지 모르는데 이 경우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대주주 일가에게) 중요해진다”는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심문 내내 이번 합병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있는 판례 등은 한 건도 내놓지 못했다. 삼성물산 측 변호인이 삼성물산-제일모직과 같은 방식의 합병을 합법으로 본 다양한 판례를 소개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엘리엇 측이 부당한 합병비율의 근거로 법원에 제출한 회계법인 보고서도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영회계법인이 심문이 끝난 뒤 “단순 투자 참고용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엘리엇 측이 인수합병에 대한 보고서로 둔갑시켰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영회계법인은 소송을 통해 엘리엇 측이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증거에서 철회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엘리엇은 심문 하루 전인 지난 18일 낸 보도자료에서 “합병안이 불공정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지지한다”고 했다. 스스로 지지한다고 밝힌 사안은 법정에서 물고 늘어지고, 정작 문제 삼은 합병의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법적 근거나 자료를 내지 못했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