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에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버킷 리스트'로 부상
교황 방문·코엘류 소설 등 영향으로 매년 20만명 찾아
[ 고재연 기자 ]
지난 9일 스페인 서북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대성당.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자 800㎞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의 종착지다. 10㎏은 넘어 보이는 배낭에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개껍데기와 조롱박을 매단 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순례자 증서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한 50대 남성이 크레덴시알(순례자 전용 여권)을 자랑스럽게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의 일정은 주교좌대성당 안에 있는 성 야고보의 유해 앞에서 순례를 무사히 마친 데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끝난다. 34일 동안 순례길을 걸어 대성당에 도착한 최철순 씨(60)가 쪽지 한 장을 뽑았다. “삶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살아내야 할 신비다.”
갈리시아지방에 있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끝 산티아고는 당시 로마를 기준으로 ‘땅끝’이었다. 성 야고보는 ‘땅끝’까지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의 제자 중 처음으로 순교했다. 이후 제자들이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겼는데, 이슬람의 공격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시간이 흘러 9세기 초 스페인 서북부지역에서 별빛이 나타나 숲속의 동굴로 사람들을 이끌었고, 이곳에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별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콤포스텔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 야고보(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축되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교황 레오 3세가 이곳을 성지로 지정하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 3대 순례지가 됐다.
100~800㎞의 다양한 순례길이 있지만, 대표적인 코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대에 있는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 팜플로나, 부르고스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의 ‘프랑스 루트’다. 유럽인에겐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버킷 리스트’ 항목으로 꼽힌다.
1982년과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데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류가 1986년 이곳을 순례한 뒤 쓴 순례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순례객이 더 늘어났다. 최근에는 순례증서를 받은 사람이 연평균 20만명에 달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인 순례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인이 찾는 경우도 급증했다. 전에는 야고보 성인의 영성을 좇아 순례길에 올랐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이곳 殮냇쨈堉병瑛?돈 세군도 페레스 신부는 “시대가 지나면서 순례자들의 목적과 이유도 달라졌다”며 “최근에는 본인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이 길을 걷는 비신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성당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를 위해 7개 언어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순례자들의 순례 이유는 영성, 치유, 친구 등 다양했다.
순례자들은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단순한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오전 6시께 출발해 대자연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20~30㎞를 걷고, 순례자 전용 숙소 알베르게(albergue)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빨래를 한 뒤 낯선 이들과 함께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발은 물집투성이지만 얻는 것은 많다.
2주 동안 휴가를 내고 11일째 길을 걷고 있는 이윤정 씨(41)는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순례길에) 한번 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며 “마을마다 소똥 냄새가 나는 자연속을 걸으면서, 인심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의 치유를 얻고 간다”고 말했다. 이씨가 얻은 ‘치유’는 무엇이었을까.
“고통은 결국 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었어요.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지나간 고통은 별것 아니었고, 마음도 더 단련됐죠. 다시 일상 순례길로 돌아갈 어떤 결의가 생겼어요.”
산티아고=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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