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속마음을 읽으려면, 야마구치의 재발견 … 최인한의 일본 바로 보기

입력 2015-06-23 07:44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2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내 선거구가 조선통신사가 왕래한 야마구치현"이라며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야마구치는 일본의 근대화, 산업화를 가져온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과 아베 총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올 연초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 대하 드라마를 보면 새해가 왔는지를 알 수 있다. NHK가 연중 가장 공을 들이는 대표 방송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촬영지는 매년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고, 주연 남녀 배우는 국민배우로 떠오른다. 새해 대하 드라마에는 일본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적 의도도 담겨있다.

새해 첫 일요일 저녁인 1월 4일에 이어 11일 선보인 올해 대하 드라마의 제목은 ‘하나 모유(花燃ゆ·꽃 타오르다)’. 주인공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여동생 스기 후미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열강의 반열에 오른 계기가 된 메이지유신 시기의 영웅들 얘기다. 메이지유신은 봉건시대인 도쿠가와막부를 끝내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 시대를 열었다.

요시다의 생가인 하급 무사 가문인 1850년대 스기(杉)가가 드라마의 중심지다. 요시다 토라지로(요시다 쇼인)는 지역에서 신망을 얻고 있는 젊은 병법학자다. 생가 인근의 주크(塾·학습 시설)에서 쿠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요시다 토시마로 등이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함께 꿈을 키운다. 이들은 뒷날 메이지혁명의 주역이 되고 메이지정부의 중심 인물로 현대 일본을 만든다.

역대 일본 총리 등 정치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정치 사상가가 요시다 쇼인이다. 그는 홋카이도 개척, 류큐(현 오키나와· 당시 반독립국)의 일본령화, 조선 속국화, 만주·대만·필리핀 영유화 등을 주장했다. 일본의 대외 개방과 부국강병을 내세운 쇼인의 사상은 메이지유신의 토대가 됐다. 역대 일본 총리들의 아시아 진출 정책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쇼인은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을 꿈꿨다.‘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고 주창했다. 그는 메이지유신 9년 전인 1859년 10월27일 안세이대옥에 연류돼 에도(도쿄)로 호송된 뒤 재판을 받고 참수된다. 향년 30세.

쇼인과 누이의 일생을 다룬 ‘하나모유’의 지역 배경은 야마구치(山口)현이다. 일본 주요 4개 섬 중 가장 큰 본섬인 혼슈(本州) 남서부에 있는 현이다. 야마구치는 14세기 성읍으로 발달했다. 교토를 본떠 건설된 시가지는 해외 무역으로 번창했다. 현청 소재지 지명도 야마구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야마구치(山口)의 인상은 좋지 않다. 야마구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폭, 깡패 등 어두운 느낌이다. 신문이나 방송, 영화 등을 통해 일본 폭력배의 대표격인 ‘야마구치파’가 깊이 각인된 탓일 듯하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는 야마구치현과 상관이 없다. 야마구치파는 효고현 고베시에 본부를 둔 야쿠자다. 초기 두목인 야마구치 노보루(山口登)의 성에서 기인한 명칭이다.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출신 정치가들이 즐비하다. 초대 총리이며, 조선 초대 총독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출신지도 야마구치다. 일본 현대 정치인 중 가장 탁월한 평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는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직접 수학했다. 쇼인의 수제자라고 할만하다.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에선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도 한일 양국간 애증의 역사를 반영한다.


대하 드라마 ‘하나 모유’가 올해 정치적으로 조명받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 고향이 야마구치현이기 때문이다. 극우적 발상과 발언으로 한국과 자주 외교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 본고장 출신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 회생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인 ‘과감한 금융정책’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대담한 성장정책’이 일본경제를 살릴지 세계 각국이 주목하고 있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 정책에 이어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하는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정책’이 올해 본격화할 것막?예상된다.
연초 일본 정부는 2015회계연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5%로 전망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96조3400억 엔(약 881조 원)의 2015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장기 디플레이션 탈출의 중대 고비가 될 올해 일본 경제의 밑그림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경제의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정치, 외교적 영향력 회복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극우 보수파 정치인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아베 총리의 핏속에 야마구치 출신 일본 선각자들의 사상이 배어있을 것이다. 그는 150여년 전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을 서구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한 요시다 쇼인의 간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겸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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