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FRAND 확약' 준수토록 해야 퀄컴 특허 남용 막는다

입력 2015-06-23 20:35  

특허 사용한 통신칩셋 아닌 휴대폰 기준 로열티 징수
휴대폰 생태계 참여 기업의 혁신 의욕 꺾는 '경쟁제한'
경쟁 칩셋업체에 대한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가 해답

"퀄컴이 경쟁 통신칩셋업체에 표준필수특허의 라이선스를 제공한다면
스마트폰·부품·운영체제 등 개발업체의 투자 및 혁신 노력에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가 사라지게 된다"

이상승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퀄컴 특허권 남용

무선통신 관련 표준필수특허 보유자이자 통신칩셋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퀄컴의 특허권 남용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에서는 두 가지 이슈가 부각됐다. 첫째, 퀄컴은 경쟁 통신칩셋 업체에는 자신의 표준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둘째, LG전자 같은 휴대폰 제조사를 대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의 특허를 사용한 통신칩셋 가격이 아니라 휴대폰 전체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부과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다. 지난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퀄컴의 현행 로열티율은 휴대폰 도매가격의 2.5~5% 수준이다.

두 번째 행위가 왜 문제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로열티 산정 기준을 부품 가격으로 하든 최종 제품 가격으로 하든 로열티율만 적절히 조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통신칩셋 가격이 1만원이고 휴대폰 가격이 1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칩셋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할 때 로열티율이 몇 %이든, 휴대폰 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의 로열티율을 10분의 1로 하면 로열티 금액은 같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타당하려면 통신칩셋 가격과 휴대폰 가격의 비율이 일정해야 한다. 휴대폰마다 가격 비율이 다르면 휴대폰별로 로열티율이 조정돼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퀄컴은 휴대폰 사양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로열티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는 내장 메모리 용량이 16기가바이트(GB), 64GB, 128GB 세 가지다. 통신사 보조금이 없는 공기계를 기준으로 할 때 아이폰6의 가격은 649달러, 749달러, 849달러이고 아이폰6플러스의 가격은 749달러, 849달러, 949달러다. 또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는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서 차이가 날 뿐 통신칩셋은 퀄컴의 ‘MDM9625M’으로 동일하다. 메모리 용량, 디스플레이, 배터리가 커짐에 따라 스마트폰 가격이 오르는데 퀄컴은 자사의 통신칩셋에 기인하지 않은 이 가격 인상분에 대해서도 2.5~5%를 로열티로 받는 것이다.

표준필수특허로 부당이득

이는 퀄컴이 자신의 표준필수특허를 남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사가 연구개발 및 투자비용을 들여 지문인식, 지급결제 등 혁신적인 기능을 도입하거나, 소비자 기호에 부응하는 디자인을 출시하거나(애플이 아이폰 크기를 3.5인치·4인치로 고수할 때 5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스마트폰의 두께를 줄이는 등), 대용량 메모리와 고화소 카메라를 장착함으로써 스마트폰 성능을 높이는 것은 퀄컴의 특허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퀄컴이 휴대폰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받는 현행 비즈니스 모델은 퀄컴이 휴대폰·부품·운영체제·애플리케이션 업체의 투자 및 연구개발 과실에 대해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휴대폰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스마트폰 생태계 참여 기업들의 투자 및 혁신 의욕을 꺾는 경쟁제한적 결과를 낳는다.

퀄컴이 통신칩셋 가격이 아니라 휴대폰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받는 구조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카메라폰이 등장했을 때부터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퀄컴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통신칩셋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커녕 국내 벤처기업인 이오넥스가 개발한 칩셋을 장착한 휴대폰 출시 홍보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국내외 경쟁당국 과징금 부과

퀄컴의 시장 지배력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4년 매출 기준 퀄컴은 4세대 롱텀에볼루션(4G LTE) 칩셋의 84%, CDMA 칩셋의 92%를 점유하고 있다.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퀄컴의 LTE, CDMA 칩셋을 제때 공급받지 않고서는 치열한 적시 출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퀄컴이 요구하는 부당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퀄컴의 특허권 남용에 대한 경쟁당국의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퀄컴에 과징금 약 2700억원을 부과하고, 휴대폰 제조사가 경쟁 통신칩셋을 구매할 때 로열티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행위 등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올초 약 1조원의 과징금과 함께 퀄컴이 휴대폰 제조사가 보유한 특허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교차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행위 등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두 경쟁당국 모두 퀄컴의 특허권 남용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는 시정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문제의 뿌리는 퀄컴이 경쟁 통신칩셋 업체에 자신의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는 데 있다. 퀄컴이 경쟁 통신칩셋 업체에 라이선스를 제공한다면 로열티는 칩셋 가격을 기준으로 하거나 아니면 칩셋 1개당 일정 금액이 돼 퀄컴이 스마트폰·부품·운영체제·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의 투자 및 혁신 노력에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가 사라지게 된다.

‘1999년 약속’ 외면하는 퀄컴

퀄컴이 지난 20여년간 누려온 시장지배적 지위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표준 선정 기구가 퀄컴의 특허 기술을 표준에 포함하고, 이를 중심으로 휴대폰·장비·네트워크 사업자의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 산업 전체가 퀄컴의 기술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표준 선정 기구는 표준에 포함된 특허 보유권자의 사후적 독점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신청 업체에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표준필수특허를 라이선스하라는 프랜드(FRAND) 확약을 요구한다.

실제로 퀄컴은 1999년 자사의 특허 기술이 3G 표준으로 채택되게 할 목적으로 ‘모든 산업 참여자’에게 FRAND 조건으로 자신의 표준필수특허를 라이선스하겠다고 확약했다. 하지만 퀄컴은 이런 확약을 어기고 경쟁 통신칩셋 업체에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고 있다. 공정위가 퀄컴으로 하여금 자신의 확약을 준수하도록 하는 시정 조치를 내려야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인한 경쟁제한적 폐해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이상승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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