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울산대 총장 "정주영 회장의 '창조적 DNA'로 현장형 인재 키우겠다"

입력 2015-06-23 21:13  

'현장 융합형 복수전공제' 도입하는 오연천 울산대 총장

울산 제조업 위기는 선도기술 부족 때문
속도로는 한계…'감성'과 '촉'으로 승부해야
인문계 학생들 산업현장서 경험 쌓게 할 것



[ 하인식 기자 ]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지난 8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재임기간이 짧은데도 울산 경제현안에 대한 그의 답변은 지역 경제전문가 못지않게 깊이있고 거침이 없었다. 오 총장은 울산대에 ‘현장 융합형 복수전공제’ 도입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학생들이 폭넓은 현장적응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산업융합’시대를 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주 울산대 총장실에서 만난 오 총장은 “울산대를 설립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황무지인 울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세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현장중심형 인재 양성을 위해 아산 정주영의 창조적 DNA를 학생들에게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제25대 서울대 총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초빙 석좌교수를 지내다 올 3월 울산대 총장에 취임했다. 오 총장은 “스컷滂若?창설자 릴런드 스탠퍼드는 철도산업을 통해 축적한 부(富)를 인재 양성에 쏟아 세계적인 명문 대학을 만들었다”며 “애국적 산업인재를 양성하길 원했던 아산의 대학 설립이념이 충실히 이행되는지 자성하며 위기 극복에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대 총장에 선임된 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취임 초 하루에 서너 번은 ‘울산경제가 어렵고 학교재단(현대중공업)이 어려운데 왜 울산에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생시절을 포함해 서울대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거기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더 이상 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책무를 다해야 할 공적 자산입니다. 공적 지위가 자신의 개인적 명예라고 집착하면 허명(虛名)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울산 마이스터고 교장을 맡으라 해도 맡았을 겁니다.”

▷울산 지역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1960년대 수출품이라고는 고래와 우뭇가사리 등이 고작이던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자리잡아 상전벽해를 이룬 곳입니다. 거대 제조업과 기업가 정신, 정부 주도 수출정책, 역량 있는 근로자들이 융합해 빚어낸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걸작품이죠. 그러나 선도기술이 부족해 울산의 주력 제조업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초대형 설비와 거대 노동력을 갖추면 세계 선도 경쟁력을 리드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자본 노동 토지 등 단순한 생산요소 결합방식에서 벗어나 선도기술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쟁력이 좌우될 것입니다. 선도기술을 爛映穗?핵심요체가 바로 융합인데, 여기에는 우수한 연구개발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엔지니어링과 근로자들도 인적 융합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울산의 적잖은 근로자들이 노동운동에 매몰돼 있습니다.

“노동투쟁도 필요하면 해야죠. 하지만 회사의 건강한 발전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파멸을 좌초할 뿐입니다. 울산박물관에 가보니 2층 교육 홀 벽면에 20.3㎡ 규모의 ‘명장의 전당’이 조성돼 있고 여기에 울산지역 기업에서 배출된 기술명장 170여명의 이름이 등재돼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산의 도전정신을 이어받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인 세 명 중 한 명은 시골의 평범한 회사 연구원 출신이었고, 2002년에도 학사 출신의 민간기업 회사원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근로자들이 기술선도의 핵심 요체로 국가 브랜드를 드높이는 일에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울산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취임사에서 ‘현장형 직업인 양성’을 강조했는데요.

“제가 울산대의 초청에 응한 배경 중 하나가 울산대만큼 산학협력 여건을 잘 갖춘 대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울산대는 뭐니뭐니해도 현대그룹 창업자인 아산이 대학을 만들었다는 뿌리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의 역할은 산업발전과 경제발전으로 연결시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울산대 창학이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따라서 울산대의 존재 이유는 학문 연구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현장형 인재’를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현장 융합형 복수전공제’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학생이 취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공과 학과·학부가 융합된 교육은 물론 취업 현장에서의 적응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인문계 학생도 졸업 후 산업현장에 취업하길 원한다면 재학 중에 이공계 수업은 물론 최소 6개월에서 1년간은 산업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학제개편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교수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학생들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요즘 웬만한 대학은 산업현장과 인턴십 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정작 학생들은 미래의 직장에 가면서 월급을 얼마나 더 받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기업들도 학생인턴들에게 단순한 심부름만 시키고 말죠. 공장 쓰레기라도 청소하며 뭔가 배워야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백해무익한 겁니다.”

▷인문계 학과 교수들이 동요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새 총장이 왔다고 제도를 단기에 뜯어고치려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스탠퍼드대가 자리잡기까지 8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대학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기업이나 정부 등 현장에 즉각 투입이 가능한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데, 교수들도 여기에 적극 동참해 달하는 주문입니다. 울산은 더 이상 규모의 경제나 스피드 경쟁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창의의 경쟁력을 무기로 삼고 ‘감성’과 ‘촉’으로 세계시장에서 대결해야 승산이 있는데 비(非)이공계 학과의 역할도 매우 크다고 봅니다.”

▷신문광이라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어린이신문이 아닌 일반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아침에 도서관에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을 2시간씩 읽는 것으로 하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신문을 읽으면서 쌓은 지식이 큰 보탬이 됐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경제 이해력 수준이 기대보다 많이 부족한데 학생들의 신문 읽는 습관도 키울 작정입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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