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이 기자 ]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관리망에서 빠진 채 서울 강동성심병원 등 병원 네 곳을 옮겨다닌 173번 환자(70)가 25일 사망했다. 정부는 이 환자가 증상이 나타난 뒤 2000여명과 접촉했다는 점에서 추가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학조사와 접촉자 관리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날 사망한 173번 환자는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도우미로 일하던 요양보호사다. 정부 관리망 밖에 있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접촉자 조사 때 함께 온 사람이 (요양보호사는) 평소 건강해 괜찮을 것으로 판단하고 보건당국에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 환자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는 구리 카이저재활병원, 한양대 구리병원 등을 거쳐 강동성심병원에 입원하면서 증세가 크게 악화됐다. 그 사이 생긴 접촉자는 2135명에 달한다.
정부의 초기 역학조사에 구멍이 뚫린 탓에 ‘메르스 꼬리’가 길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는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역학조사 후 방역조치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정보 제출을 거부하거나 거짓 정보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역학조사관이 조사 도중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실시간으로 논의할 책임자나 시스템도 없다. 모든 조사가 끝나 내용이 정리돼 문서로 보고될 때까지 해당 접촉자와 병원 등엔 관련 조치가 유예된다. 기 교수는 “병원과 개인이 받는 불이익이 없도록 기관 폐쇄와 자가격리에 따른 손실을 보상하는 체계가 있어야 역학조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날 감염환자의 이동 경로와 진료의료기관을 의무 공개하는 일명 ‘메르스대책법’을 의결했다.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와 이동수단, 진료 의료기관, 접촉자 현황 등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심환자가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은폐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또 감염병 전문 역학조사관은 보건복지부에 30명 이상, 시·도에 2명 이상 두기로 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과 환자 및 격리자, 의료기관에 대한 손실보상 문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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