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의총서 "자동폐기가 파국 막는 길"
일부 의원들은 "재의결 부쳐 부결시키자"
[ 유승호 기자 ]
새누리당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이날 약 다섯 시간에 걸친 의원총회 끝에 내린 결론이다. 새누리당이 법안 상정에 동의하지 않거나 상정돼도 표결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법 개정안은 내년 5월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대로 자동폐기된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을 다시 논의하지 않기로 하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간 갈등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새누리당은 하루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이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의원들은 계파별로 모임을 열고 기자회견을 통해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의원총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의원 41명이 발언에 나섰다.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말고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도록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재의결에 부쳐 부결시키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국회법 개정안 중 위헌성이 강하다고 지적된 부분을 재차 수정해 다시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재선 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을 국회로 되돌려보낸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부터 청와대는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도 이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가 당에 전달되지 않았다”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청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이 정해졌다.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위한 여야 협의를 하지 않고,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하더라도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당청이 계속 대립해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는 것이 당에도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분석된다. 김무성 대표는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어렵고 고뇌에 찬 결정을 한 것을 당이 절대 존중한다”며 “의원 다수의 뜻을 받아 재의결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당청 간에) 소통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분열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 논란이 시작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법안의 위헌성과 膨뼉層돎?책임 문제를 놓고 친박근혜(친박)계와 비박근혜(비박)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한 재선 의원은 “재의결 절차를 진행하면 당내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의원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비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당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상황에서 다시 대통령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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