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해외펀드만 비과세?…"기존 펀드 무더기 해지는 어쩌라고"

입력 2015-06-26 21:09   수정 2015-06-30 17:35

현장에서

재간접펀드 稅혜택 제외 땐 中펀드에 돈 더 몰릴 우려
"해외투자로 원화약세 유도…정책효과 반감할 것" 지적



[ 허란 기자 ]
“원화 약세와 세수 확보라는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하다가 어정쩡한 대책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지난 25일 일정 기간 비과세 혜택을 주는 ‘해외주식 투자전용펀드’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직후 한 자산운용사 임원이 한 얘기다. 시중의 부동자금을 해외 투자로 돌려 원화 약세를 유도하려는 게 이번 대책의 취지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벌써부터 정책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펀드 갈아타기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비과세 혜택을 신규 해외펀드로 한정한 데다 1인당 비과세 한도를 설정하기로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업계는 우선 신규 해외펀드에만 비과세 혜택을 줄 嚥?기존 가입자들이 새 펀드로 갈아타기 위해 종전 펀드를 대거 해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펀드 투자자들은 증권사나 은행에서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신규 펀드에 가입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07년에는 특정 시점 이후의 납입금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줬기 때문에 불편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신규 펀드는 비과세 혜택이 종료된 이후 ‘자투리펀드’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자투리펀드는 설정액 10억원 이하의 소규모 펀드로 위험 관리가 어려워 결국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펀드 갈아타기 과정에서 중국 주식으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역외펀드 등 해외에서 설정된 펀드에 재투자하는 ‘재간접펀드’는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재간접펀드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들 펀드 가입자들로서는 재간접펀드를 해지하고 세제혜택이 있는 ‘중국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해외펀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 등 신흥아시아주식펀드(244개) 설정액은 8조6835억원으로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688개)의 45.74%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펀드로의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경우 국내 투자자산의 위험 노출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서진희 피델리티월드와이드자산운용 상무는 “2007년 해외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도 나중에 중국에 집중 투자한 펀드가 문제가 됐는데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1인당 비과세 한도를 두기로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1인당 5000만원 안팎에서 비과세 한도를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경민 KDB대우증권 PB갤러리아 이사는 “비과세 한도가 있으면 고액 자산가들은 금융종합소득과세 때문에 해외펀드 투자를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수 확보 차원에서 비과세 한도를 두는 것이겠지만, 결국 원화 약세를 위한 해외투자 확대라는 취지를 달성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기 전부터 이런 우려가 쏟아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허란 증권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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