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선 기자 ]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서울가정법원의 한 부장판사에게 “이혼을 허가할 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중 과연 어떤 것을 따르는 게 정답이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지난해 이맘때쯤 일본의 한 법학 교수가 부장판사를 찾아왔다. 그 교수는 정부의 용역을 받아 ‘이혼한 가정의 미성년 자녀들의 복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교수는 연구를 위해 선진국 독일을 찾아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정작 독일에 가서 보니 이혼가정 자녀를 위한 별다른 제도를 찾을 수 없었다. 독일에선 3년간 별거하면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났다고 보고 이혼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혼이 쉬워지니 부부가 자식을 위해 하는 게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 전문가들에게 어느 나라를 찾아가면 좋을지 물었다. 독일에선 뜻밖에도 이웃 한국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일본 교수가 서울가정법원의 판사실을 찾게 된 경위다. 부장판사는 “예전엔 도장만 찍으면 이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재판상 이혼하기 위해선 미성년 자녀를 둔 경우 상담을 받아야 하고 의무 면담, 부모 교육, 숙려 기간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이혼할 수 있다”며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을 통해 잊고 있었던 아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준비된 이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소송 공개변론을 계기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중 어느 쪽을 채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 민법은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유책주의를 따른다. 반대로 파탄주의는 혼인생활이 사실상 파탄났다면 잘못한 쪽의 이혼 청구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선 파탄주의를 따른다.
한국은 1965년 이후 50년간 유책주의를 고수해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안에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유책주의를 파탄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파탄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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