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수술대 위에 올랐다. 2005년 코스닥시장 합병 이후 10년 만의 재수술이다. '경쟁력 부재와 미래 발전을 위한 체질 개선'이 거래소에 내려진 정부의 종합 진단서다. 수술 집도는 금융위원회가 맡았고, 거래소 수장이 수간호사로 나섰다. 거래소 노동조합과 일부 직원들 그리고 증권·선물회사 등 현장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거래소 지주회사 설립과기업공개(IPO), 코스닥 시장 분리 등을 둘러싼 쟁점들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NHN 이전상장·넥슨 일본상장…코스닥 기능 저하 결과"
"코스닥 분리 실익 없다…10년 전 통합한 이유 돌이켜봐야"
코스닥시장 분리를 놓고 금융당국과 시장참여자 간 '갑론을박'이 다시 한번 촉발될 분위기다. 정부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한 후 상장 추진 방침을 발표하면서 코스닥이 이른바 '한국거래소지주'의 별도의 자회사로 분리해 청산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지면서다.
◆ "NHN, 넥슨의 코스닥 외면…분리가 필요한 이유"
코스닥시장 분리의 전제는 비효율성 확대로 인한 경쟁력 저하 문제가 깔려 있다. 코스닥은 1996년 유망한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로써의 역할을 부여 받아 출범한 뒤, 2005년 유가증권시장을 운영하던 한국거래소와 통합했다. 횡령과 배임이 판을 치던 코스닥시장에 건전성을 불어넣겠다는 게 취지였다.
하지만 통합 이후 거래소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함께 관할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코스닥 만의 '역동성'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는 게 현재까지 나온 분리 주장의 핵심이다. 이로 인해 코스피의 '2부시장'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코스닥을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는 측의 주장이다.
김학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지난달 28일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코스닥은 2000년 IT버블 이후 상장요건이 강화되는 등 시장 안정성은 좋아졌지만 역동성은 떨어졌다"며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지역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코스닥시장이 중견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코넥스시장의 규모가 작아 중견 미만 기업들에 대한 시장 기능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며 "거래소 시장이 대내적으로는 독점 체제처럼 보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이미 경쟁 체제"라고 지적했다.
경쟁 체제 없이 코스닥이 코스피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상장서비스의 품질 저하와 주식관련 상품 개발 부족 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코스닥 분리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외감대상기업 중 약 9000여개가 코스닥 상장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연간 신규상장은 최근 3년간 40건 내외에 불과하다. 상장제도가 환경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경직된 상태로 운영되면서 신규상장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 이번 거래소 구조개편의 한 축으로 꼽힌다.
또한 코스닥프리미어, 스타지수 등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대체지수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거래소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 169종목 중 코스닥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는 4개 종목에 불과하다는 점도 코스닥 분리의 이유로 꼽고 있다.
금융위 측은 "NHN이 2008년 코스피로 이전상장하고 국내 대표 게임업체인 넥슨이 일본에 상장하는 등 코스닥 기능 저하로 나타난 결과"라며 "이 결과 통합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스닥은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코스피 2부 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코스닥을 통한 모험자본 회수 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도 이들이 코스닥 분리를 주장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선순환을 통한 인수합병이 활발해 자금 회수가 용이하다는 것. 한 마디로 코스닥 분리로 '규제 완화'를 유도해 자금 유입과 유출을 원활히 해야한다는 얘기다.
금융위 측은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탈의 인수합병을 통한 자금회수율이 76%에 달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같은 방식의 회수율이 2%대에 그치고 있다"며 "이는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선순환을 위해 다양한 모험자본의 회수 수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 "코스닥 분리 실익 없다…통합 당시 돌이켜봐야"
반면 코스닥 분리의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스닥을 자회사로 분리한 조직구조와 현행 구조의 차별성이 부족한 데다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다.
엄경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미 2013년 거래소 구조 개편을 통해 코스닥은 KRX 이사회 외부로 분리돼 독립기구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업 계획과 예산 등에 대해 법적으로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KRX가 거래 기능을 담보하는 모든 기관의 지주회사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편의 때문에 이러한 이상한 형태의 자회사를 또 하나 만들어내는 결과는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코스닥 분리 시 더 큰 우려는 일반 투자자 보호 문제다. 코스닥 역동성 강화는 기본적으로 현재보다 상장기업의 개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는 과거 10년 전 코스닥 통합 과정에서 나왔던 얘기와 완전히 정반대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당시 기업들에 대한 상장의 문턱이 대폭 낮아지자 투기로 시장이 혼탁해졌고, 상장사 임원들의 횡령·배임이 잇따르면서 코스닥 건전성 문제가 끊임 없이 제기된 끝에 2005년 전격 거래소 통합한 전례가 있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코스닥 분리를 통한 상장문턱 낮추기에만 정책을 집중할 경우 자칫 부실기업 상장에 따른 일반투자자의 대규모 피해로 번질 수 있다"며 "거래소와 코스닥 통합 당시 어떤 취 熾?의해서 이뤄졌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 자생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코스닥은 이미 지난해 25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상품과 대표지수 개발에 실패한 코스닥 입장에서 현재 상장수수료만이 거의 유일한 수익모델인 상황.
코스닥 분리 시 코스피와 별도로 새로운 전산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등 불필요한 비용만 발생하고, 상장 수수료를 인상할 경우 오히려 중소·벤처기업들의 기업공개 문턱만 높아질 것이란 게 이유다.
이동기 거래소 노조위원장은 "코스닥이 분리될 경우 거래 수수료를 인상하지 않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며 "코스닥 경쟁력 강화와 이번 거래소 개편 방안 사이에 적합성과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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